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제전인 런던올림픽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4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올림픽은 특히 사상 처음으로 완벽한 양성평등 올림픽으로 치러지게 된다. 유일하게 금녀의 원칙을 고집해 오던 복싱이 정식 여자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또 여성선수들의 참가를 금지해 오던 일부 아랍권 국가들이 여성선수들을 보냄으로써 올림픽은 비로소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면모를 보이게 됐다.
올림픽은 이처럼 진화하고 발전해 왔지만 올림픽의 기본정신을 훼손해 온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업주의’와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그것이다. 올림픽이 갈수록 상업화 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지적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마케팅을 책임졌던 한 인사의 비유처럼 “올림픽은 세상에서 가장 긴 광고”이다. 그러나 수많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상업화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돼 버렸다.
그러나 상업주의보다 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해 온 것이 스포츠 내셔널리즘이다. 나치와 파시즘은 스포츠, 특히 올림픽을 민족과 국가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이용했다. 또 냉전시대에 올림픽은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이처럼 일그러진 올림픽의 역사는 많이 청산됐지만 부끄러운 과거의 잔재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올림픽이 겉으로 내세우는 구호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이지만 실제로 이 제전을 지배하는 것은 ‘롬바르드 윤리’로 대변되는 승리지상주의다. 게르만족의 일족으로 6세기 이탈리아를 침공한 롬바르드족은 “승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것”이라는 모토를 앞세웠다.
많은 국가들은 롬바르드 윤리로 무장한 채 올림픽에 참가한다. 그 바탕에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올림픽에서의 승리는 더 이상 선수 개인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적, 국민적 자부심이 된다. 승리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보상이 클 수밖에 없는 역사를 겪은 국가일수록 이런 분위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다.
대한민국은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아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라다. 한일전을 떠올리면 바로 수긍이 될 것이다. 그 한가운데는 미디어가 자리 잡고 있다. 몇 주 전부터 한국 TV프로그램을 보면 화면 오른쪽 상단에 올림픽 D-몇일이라는 자막이 항상 떠 있다. 방송들끼리의 경쟁 때문이겠지만 마치 온 나라가 올림픽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림픽 중계방송은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한껏 부추긴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이 던지는 멘트에는 원초적인 애국심이 그득하며 국민들은 이들의 중계를 들으며 따라 흥분한다. 메달수와 순위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 것이 올림픽의 관행이지만 언론들은 마치 메달수가 국력의 순위라도 되는 듯 요란을 떤다. 한국선수들 때문에 행복해 하거나 불행해 지는 것이 올림픽 기간의 한국민들이다.
스포츠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힘든 훈련을 거친 선수들이 빼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안겨주는 보편적인 감동이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기량에 우리는 탄성을 보내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포츠 내셔널리즘에 빠져 우리 것만 들여다보게 되면 자칫 이런 보편적인 감동을 그냥 지나치게 되기 쉽다. 미국 여성들은 스포츠 중계를 잘 보지 않는다. 유일하게 많은 여성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는 스포츠 프로그램이 올림픽 중계다. 미국팀 때문이 아니다. 심층 조사를 해봤더니 “역경을 극복하고 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 개개인의 스토리를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올림픽에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감동을 전해주는 스토리들이 넘쳐난다. 이들의 도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닮아 있으며, 그래서 습관적이 돼버린 일상에 자극이 된다. 너무 ‘우리 선수들’의 경기결과에만 일희일비하게 되면 순간적으로는 짜릿할지 몰라도 곧 허전함이 뒤따른다.
공간적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비이성적인 스포츠 내셔널리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조금은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대축제의 풍성함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6월 한 달 온 유럽을 달구었던 ‘유로 2012’를 그런 시선으로 지켜보며 축구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듯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