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20여명의 북한 군인들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리 총참모장도 교전과정에서 부상을 당했거나 사망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군부의 실세 리영호가 돌연 숙청됐다. 그게 한 주 전의 일이다. 그리고 3일후 북한의 ‘청년대장’ 김정은은 인민군 원수가 됐다. 평양에서 벌어진 이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한 국내 신문이 첩보수준이라는 전제하에 전한 내용이다.
왜 갑작스레 리영호는 계급장을 떼게 됐을까. 왜 총격전까지 벌어졌나. 평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계속 던져지는 질문이다.
“선군(先軍)에서 벗어나 선경(先經)이나 선민(先民)으로 간다는 신호로 보아야한다.” “중국을 향한, 아니 중국이(뒤에서) 취한 조치일 수도 있다. 선군정책의 상징 리영호가 숙청되고 친중파인 장성택의 입지가 더 강화됐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요약하면 권력투쟁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변화의 측면이 더 짙다는 것이다. 아주 틀린 진단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권력체계가 김정은 체제로 굳어지면서 뭔가 개혁개방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석연치 않은 부문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명색이 군부 1인자다. 그런 리영호 해임의 모양새가 우선 그렇다. 그리고 총격사건이 사실이라면 북한이라는 체제의 속성을 감안해도 단순한 정책변화 결정과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관측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이다.
“정책변화 때문에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다. 요트나 멋있는 집 때문에 싸울 수는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지적이다. 정책노선을 둘러싼 군(軍)과 당(黨)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김씨 왕조 패밀리와 군과의 내부 갈등으로 보여 진다는 얘기다.
무엇이 갈등을 불러왔나. 한 가지 용어가 떠오른다.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다. ‘도둑정치’로 번역되는 이 말은 위정자 또는 지배층이 모두 도둑이나 다름없는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둑정치는 일반적으로 독재체제다. 그 도둑정치의 주역은 권력유지를 위해 공공자금을 유용하면서 개인의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 기구를 총동원한다.
북한의 실상 그대로인 이 ‘클렙토크라시’란 렌즈를 통해 볼 때 평양에서 일어난 사태의 성격이 조금은 더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김정은은 군부중심 약탈 경제 청산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리영호 해임 한 주 후 한국 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분석이다.
북한에서 군은 국가 내 국가 같은 존재다. 17~54세 연령층 북한 남성인구의 20%가 군에 속해 있다. 군은 핵무기 관리와 미사일 판매, 그리고 소비재 구매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예산권을 가지고 있다.
북한 경제 전체의 70% 정도를 장악했다. 그 뿐이 아니다. 외화벌이 사업에서도 독주하다시피하고 있다. 이 같이 ‘제 2경제’로 불리는 군주도 경제가 날로 비대해지면서 군부 실력자들은 기득권층화 되고 있는 것이다.
군부가 주도해온 그 약탈경제 구조를 당과 내각이 장악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경제발전도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신군부로 불리는 김정일 시대 선군(先軍)정치의 핵심세력에 대해 숙정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군부 숙정을 통한 경제 바로 세우기는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기묘한 사실은 오늘날 북한 사회를 지탱시켜 주고 있는 것은 부정부패라는 점이다. 배급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보통의 북한주민들은 소득의 75%를 장마당에서의 거래에서 올리고 있다. 그 장마당은 그러나 북한의 실정법에 따르면 불법이다. 장마당은 그러므로 북한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로 존립이 가능한 것이다.
그 장마당 행위에 깊숙이 관련돼 있는 것이 군이고 공안세력이다. 뇌물을 받고 밀수를 묵인한다. 아니 때로는 밀수에 적극 앞장선다. 시장 세력과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 실정법에 따르면 범죄행위이다. 때문에 그 근본적 척결에 나섰다. 화폐개혁이다. 그러나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전례 없이 공개사과에 나섰고 애꿎은 경제 테크노크라트만 희생양으로 처형됐다.
김정은이 장성택 등 당료를 앞세운 대대적인 신군부 숙정작업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두고 볼일이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들 역시 도둑정치의 한 주역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개혁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수령절대주의 체제 하에서 개방은 스스로 체제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는 일반적으로는 악(惡)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라이프 세이버(life-saver)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반발성의 후폭풍이다. 군총참모장을 해임하는 데 교전상황이 벌어졌다. 그 자체가 김정일 체제의 권력 균형이 극히 유동적이라는 증거다. 그래서 백파이어의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옥세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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