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한 영화의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아부의 왕’이 그것인데 한 아부의 달인이 처세에 영 숙맥인 젊은이를 도와준다는 내용의 코믹 영화다. 물론 결론은 아부예찬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리뷰들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많은 관객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부에 대한 대중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이 읽혀진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서슴없이 아부를 하는 소신파 아부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부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면서도 동시에 속으로는 기회가 만들어지면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선망하기도 한다.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찾는 것은 다른 이들의 아부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관음적 욕망의 발현일 수 있다.
아부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아부꾼 하면 아주 몹쓸 사람으로 쉽게 단정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아부를 마냥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아부의 DNA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공격에는 저항할 수 있지만 칭찬(아부)에는 무력한 것이 우리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직장에서 아부가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우리가 매일매일 목격하고 있는 바다. ‘실력 있는 놈이 운 좋은 놈 당할 수 없고, 운 좋은 놈이 아부하는 놈 당하기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는 유전학적으로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 부정적 어감을 지녀온 아부라는 말에 긍정적인 함의가 입혀진 데는 타임지 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겔의 공로가 크다. 그는 아부를 상대방의 호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본다. 그러니 그것을 너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며 아부의 욕망을 두둔한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중을 상대로 얼마나 아부를 잘 하는가는 정치인들의 성공에 필수적인 자질이 된다. 대중의 호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정치인은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표를 가진 대중을 향해 끊임없이 아부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소통자로 평가받는 레이건은 대중을 상대로 한 아부에 가장 뛰어났던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인들의 지혜를 믿었을 때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부는 십중팔구 의도했던 효과를 거둔다.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부를 들으면 인정받았을 때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 진다. 세로토닌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무엇을 얻어내거나 힘 있는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할 때 아부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또 적당한 수준의 아부는 사회생활을 원활히 해 나가는데 필요한 윤활유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부는 인간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이고 진화적으로도 많은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아부가 지나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아부의 먹이가 된 사람에게 있다. 생존을 위해 하는 아부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분별력을 잃은 채 아부에 휘둘리는 쪽의 책임이 더 크다. 적당히 아부를 즐긴다면 자기만족이 되지만 지나치게 아부에 중독되면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진실까지 외면하게 된다.
“자신을 아부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했던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아부의 목표물이 되는 리더들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결벽증 환자처럼 아부를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수많은 권력과 기업의 흥망사는 이것을 증언해 주고 있다.
바야흐로 ‘아부의 계절’이다. 대권경쟁이 본격화 되면서 유력주자들 뒤에는 줄서기가 한창이다. 주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처신하는 아부의 달인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띈다. 또 주자들은 주자들대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아부경쟁을 벌이고 있다.
선거철은 모처럼 국민들이 윗사람 대접을 받는 시기이니 립 서비스일망정 이들의 아부를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하지만 선택은 냉정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현란한 수사에 현혹되지 않는 똑똑한 국민들만이, 아부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을 볼 줄 아는 현명한 리더를 고를 수 있다. 아부가 난무하는 계절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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