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주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가 등장했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가 연주되면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백스크린을 통해 방영됐다. 그리고 노출이 심한 드레스 차림의 20대 여성들이 노래하며 춤추며 무대를 누볐다.
한국의 걸 그룹을 연상시키는 북한 모란봉 악단의 공연 광경이다. 7월의 어느 날 평양에서 일어난 이 일을 주요 언론들은 대부분이 다루었다.
김정은 시대를 맞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인가.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가 던진 질문이다. 홍콩의 아시아타임스, 또 독일의 스피겔지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K-Pop의 멜로디가, 가사가 흘러들어간다. 한국의 인기 연속극이, 영화가 소리 없이 보급된다. 외부의 정보, 특히 풍요와 자유가 넘쳐흐르는 한국 문화가 파고든다. 그러다 보면 고립된 북한이란 구조물은 터마이트가 갉아 먹은 것처럼 어느 날 폭삭 무너지고 만다.
이걸 ‘터마이트 이론’ 이라고 불러도 될까. 외부의 정보를 유입시켜라. 전파로 쏘든지, 풍선을 띄우든지. 그러면 북한이라는 체제는 무너지게 돼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가들의 믿음이다.
90년대 최초의 탈북자들이 부딪히게 된 외부 세계는 온통 놀라움이었다고 한다. 북한 보다 못 사는 나라로 인식했던 중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우선 놀랐다. 풍요한 한국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오늘날 북한 주민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발전상을 직접 경험하고 돌아간 사람만 수십만이 넘는다. 올해만 해도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북한 주민은 4만 명에 이른다. 개성공단 근로자는 모두 5만여 명이다.
게다가 장마당에 넘실대는 것은 외제 상품이고 DVD, MP3, USB 등을 통해 유입된 K-Pop, 한국 드라마, 영화가 대유행이다.
한 세대 전에 비하면 외부 정보의 홍수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뭔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모란봉 악단의 파격적인 공연과 관련해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던지고 있는 질문도 같은 맥락에서의 질문이다. 상당히 많은 외부 정보가 유입됐다. 그러니 변화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질문인 것이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외부 정보의 유입은 북한주민의 의식을 변화시켜 결국은 체제붕괴로 이어진다.” 소프트 파워 신봉자들의 여전한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다른 한쪽에서의 지적이다. 말하자면 ‘터마이트 이론’은 혹시 희망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정보의 양이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은 아니다. 70, 80년대 동구권 국가 주민들은 외부 정보에 결코 어둡지 않았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TV를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지의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서구에서 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소련 국민들도 외국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는 없었다.
무엇이 그러면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게 했나. 단순한 정보의 양 보다는 정보의 스타일이다. 80년대 말 동구권 주민들은 스타일이 다른 정보를 얻게 된다. 동독 주민들은 바웬사가 이끄는 노조가 폴란드 공산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을 듣게 되고 알바니아 국민은 차우세스쿠 정권붕괴 정보에 접하게 됐다.
민중을 공포의 벽에 가두어 놓았다. 공포를 극대화 시킨 통치방식이 전체주의 폭정체제다. 그 공포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 정보가 전해지면서 동구권은 정치 대변혁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랍의 봄’도 마찬가지다. 아랍 주민들을 분기시킨 것은 단순한 외부 정보가 아니다. 다른 스타일의 정보였다. 자신들보다도 더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민중을 공포의 벽에 가두고 그 너머에서 안존해 있는 독재 권력이라는 정보다.
관련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평양 사람들이다. 평양은 출신 성분이 좋은 충성계층이 모여 사는 도시다. 평양에는 지방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특혜가 집중돼 있다. 그 평양이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배급제 붕괴 이후 대외무역과 뇌물상납을 통해 부를 쌓은 사람들 대부분이 평양 시민이다. 그 평양에서 당국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 세뇌를 위한 생활총회니 강연회 같은 것은 형식상 의례가 됐다. 그러면서 한류(韓流)의 영향이 가장 큰 곳도 평양이다. 한마디로 충성심 따위는 사라진지 오랜 것이 평양시민의 오늘날 모습이다.
해외여행, 다시 말해 중국 나들이도 가장 잦은 계층도 이들 평양시민이다. 그들은 그 중국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까.
스팡 사태 등 하루에 500건 이상 끊임없이 벌어지는 시위. 그 시위의 격랑 속에 공포에 짓눌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중국공산당 체제이기에 하는 말이다.
<옥세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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