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근 한 TV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의원에 대해 한마디로 인물평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바른생활 소녀’라고 대답했다.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인 이 최고위원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언제나 반듯하며 원칙을 어기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주 오래 전 박근혜 의원을 인터뷰했던 한 선배 기자는 그녀의 우아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들려준 적이 있다. 박 의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던 언론인들은 한결같이 호의적인 소감을 털어놓는다. 시종일관 감정의 기복 없이 그녀가 보여주는 차분함과 단정함은 놀라울 정도라는 것이다. 박 의원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처음 들어와 앉았던 자세를 거의 한 번도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선승처럼 꼿꼿함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근혜 의원의 절제력은 대단하다. 10여년간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꼿꼿함과 단정함은 이 같은 절제력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박근혜는 스타 정치인으로 설 수 있었다.
그런데 박 의원의 이런 성격은 정신분석학에서 ‘부성콤플렉스’라고 부르는 특성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부성콤플렉스’는 아버지를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계속해 받아들이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약점과 유약함을 지닌 현실의 아버지를 내면화 하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보통 성인이 되면 이런 콤플렉스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도 ‘부성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아버지가 계속 신화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이 같은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들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영원한 소녀’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원한 소녀’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바로 박 의원이 보이고 있는 것과 같은 놀라운 절제력이다. 이혜훈 최고위원의 인물평은 섬뜩할 정도로 여기에 들어맞는다.
박 의원은 아홉 살 때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아버지를 바로 곁에서 보며 자랐다. 또 어머니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한동안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친 박근혜가 ‘부성콤플렉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박 의원은 아버지 박정희의 과오를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일에 극도로 인색하다. 이런 이슈가 제기되면 평소의 절제력을 잃고 불쾌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부성콤플렉스의 틀로 분석해 보면 왜 그런지 금방 이해가 된다.
박 의원이 대권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그녀가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후보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40%에 육박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지지해 줄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이들은 대부분 박정희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와 향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박 의원의 지지층 확장과 관련해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박정희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유권자층 역시 만만치 않은 비율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가지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의원이 압도적인 표로 ‘대통령이 돼선 안 될 후보’ 1위에 꼽힌 것이다. 2위와 격차가 3배 이상이나 났으니 정치부 기자들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다. 정치부 기자들은 이미지를 통해 박 후보를 대하는 국민들과 달리 그녀를 지근거리에서 보고 경험하는 집단이다.
박 의원 측근 가운데는 쓴소리를 했다가 따돌림을 당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박 의원이 인의 장막에 갇혀 있으며 민주주의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는다. 박 의원이 소통과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려는 이미지와 달리 무의식 속에서는 아버지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의원의 대선 레이스는 다른 주자들과의 경쟁이라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가둬온 ‘부성콤플렉스’를 벗어 던지지 못한다면 그녀의 대권플랜 완성에 꼭 필요한 표의 확장성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콤플렉스 탈출은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신화의 포장을 걷어버리고 현실의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정략적인 이미지 메이킹 차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은 쉬 바뀌지 않는 법. 그래서 박근혜가 안고 있는 숙제는 난제라 할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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