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신문사 근처의 한 커피샵이 평소보다 한산하다. 손님들이 듬성하고 특히 컴퓨터를 들여다보거나 공부를 하며 앉아 있던 젊은 고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반경 1~2마일 내에 한국의 대형 커피체인 업소 몇 개가 동시에 들어오면서 영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 주인의 푸념이다. 대형 업체들이나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인근의 군소 가게들이 흔들리거나 심지어 문을 닫는 것은 점점 흔한 일이 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갖는 이점을 맘 앤 팝 스토어들이 이겨낼 재주는 별로 없다. 대형업소들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편리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가 공세를 버텨내기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대기업들이 기업형 수퍼마켓과 프랜차이즈 등의 형태로 소매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동네 상권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룡업체들이 소매 상권을 점차 장악하면서 독립 소매업소들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월마트가 대표적인 업체다. 월마트가 공격적으로 스토어들을 늘리면서 소매업소들의 불안감은 높아가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지역 업소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인업소들도 예외는 아니다. 동부지역 월마트 진출 예정지에 소재한 한인업소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생존권 지키기에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시위를 벌이고 미국 비즈니스 단체들과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여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연대가 확산되면서 몇 개의 월마트 업소 진출은 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움트고 있다.
소비자들이 낮은 가격을 찾아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 낮은 가격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월마트는 그래서 거대한 유통기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부나방처럼 끌어들이는 낮은 가격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높은 비용이 숨어 있다.
몇 년 전 영국의 박스오피스에서 상위권에 올랐던 영화 ‘월마트-낮은 가격의 높은 비용’(Walmart-The High Cost of Low Price)은 이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월마트가 어떤 동네에 진출하면 일부 저임금 고용이 이뤄지지만 인근 군소업소들이 영업에 타격을 입음으로써 고용효과는 금방 상쇄돼 버린다.
게다가 동네 가게들이 흔들리고 사라지면서 가족과 커뮤니티라는 공동체적 가치까지 위협 받는다. 월마트가 내세우는 낮은 가격은 매력적이지만 그 대가로 결국 우리는 높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다. 로버트 그린월드가 제작한 이 영화가 나온 후 같은 주제를 다룬 많은 연구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출판물들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쉽게 휩쓸리지 않는 미국인들의 기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대 유통기업이 내세우는 낮은 가격을 거부하고 가격이 조금 높은 군소업소들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 가운데는 인터넷 유통공룡인 아마존닷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군소 사이트들을 이용해 책과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만의 고집과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월마트나 아마존처럼 거대한 기업들이 점점 커지다 보면 결국 독점 권력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금전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 온라인 맘 앤 팝 스토어들을 열심히 이용하는 것이다. 군소 사이트들은 아마존 같은 공룡업체는 제공하기 힘든 자신들만의 독특한 서비스를 만들어 고객들을 끌고 있다. 가만히 앉아 고객들의 연민에만 기댄다면 문 닫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가 업소에서 사는 것은 단지 물건만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경험과 교감 등 보이지 않는 것들도 포함돼 있다. 그렇기에 낮은 가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여기에 군소업소들이 대형업체들의 공세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이 들어 있다.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 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경제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가격이 싼 초대형 업소를 찾는 것이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종의 다양성이 무너지면 생태계의 교란이 초래돼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약간의 금전적 손해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 없이 개념 있는 소비자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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