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안민족은 가장 고귀한 고등 인종이다. 이 아리안 민족의 피가 하등 인종의 피와 섞여서는 안 된다’- 1933년이었나. 히틀러의 나치가 ‘유전 위생법’이란 것을 공포한 것이. 그때 내세운 주장이다.
아리안민족우월주의는 그러면 히틀러 나치 집단만의 망상이었을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30년대 많은 유럽인들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피부색, 핏줄에 집착한 민족주의 사조에 물들어 있던 것이 그 때의 시대상이었으니까.
오늘날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화두는 단연 민족주의다. 날로 우경화 하고 있는 일본 사회, 무한대로 펼쳐진 사이버 공간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 30년대 유럽 형 민족주의가 가장 짙은 그림자가 드리고 있는 곳이 동아시아지역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외국인에 비쳐진 한국은 그 어느 곳보다 민족주의 색채가 특히 강한 사회다.
“한국인들의 애국심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애국심과 상당히 다르다. 대한민국과 관련지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보다는 한민족(韓民族)과 연관 지으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B.R. 마이어스의 진단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 강점기에 저항민족주의로 출발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한국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일본이 그 틀을 만들고 고취시킨 대화(大和)민족주의의 복사본이라는 점이다. 뭐랄까,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할까. 그런 측면이 짙은 게 한국의 민족주의다.
요즘 들어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 100만여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함께 다민족 사회화 되면서 순혈주의도 퇴조했다. 그러면서 열린 민족주의 형으로 발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0년대 형 민족주의가 가장 극단적 형태를 띠며 지배하고 있는 곳은 북한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죽은 지 이미 오래다. ‘주체사상’이라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그러나 극단적 형태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어 북한주민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아시아의 공산주의는 본래부터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 체제는 민족주의를 통치의 한 방편으로 삼아왔다. 그 결과 군국주의 일본 형 민족주의가 원형 그대로 살아 꿈틀대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김일성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남북통일을 어렵게 하고 있다. 통일이 된 후에도 어쩌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불러 올수도 있다. 무엇이. 북한주민을 지배하고 있는 그 기형의 민족주의가 그렇다는 것이다.
통일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결국은 독일모델이 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수령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의 반감이 폭발상황에 이른다. 반비례해 통일에의 열망은 한껏 고조된다. 결국 그 날이 왔다.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통일과 함께 북한 주민이 고대해온 것은 강한 민족적 유대감이다. 그리고 남쪽의 형제들이 그 동안 이룩한 부(富)를 그들과 나눌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통일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게 북한주민의 생각이다.
“아마 바로 환멸을 느낄지 모른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말이다. ‘김일성 민족주의’에 중독된 그들에게 서구화된 한국문화는 타락된 문화로 비쳐질 수 있다. 외형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사고방식도, 일상의 습관도 전혀 다르다.
그 남쪽 형제의 모습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냉담한 그들의 태도에 배신감마저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대두되는 것은 무엇일까. 더 더욱 기형적인 모습을 띤 순혈주의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가 아닐까 하는 것이 란코프의 예측이다.
“그들은 돈에 민족의 영혼을 팔아먹은 가련한 존재들이다. 한민족의 본질을 지키고 있는 것은 우리다.” 이 같은 극단적 형태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스스로의 패배감, 상실감을 메우려 든다. 그 기형화된 민족주의가 통일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남한에서 생활하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탈북자가 한국 사회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북한 특유의 대남공작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남조선 정보원에 꾀어 넘어갔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이 그렇다.
그러나 일말의 진실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탈북자에게 차례지는 일자리란 오물청소, 그릇 닦기 등 가장 비천하고 힘 든 일뿐이며 자살률이 높다’고 한 부문이 그렇다.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부딪기고 있는 현실이 그렇기에 하는 말이다.
6년이나 한국에서 살면서 적응을 못 했다. 그리고는 북한에 돌아가 탈북자들은 남조선 사회를 저주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50대의 탈북 여성. 그 모습은 무엇인가를 예표 하는 것은 아닐까. 머지않은 장래, 언젠가 이루어질 통일 후에 일어날 사태를.
통일이 기다려진다. 그러나 그 통일이 두렵기도 하다. ‘김일성 민족’이란 거짓 메시지가 남긴 상처가 여간 깊고 큰 것이기에
<옥세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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