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두주 사이에도 여러 죽음을 접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특별한 죽음도 있었다. 이 땅에 살던 여러 존재들이 때가 되어 저마다의 삶을 마무리하고 본향으로 돌아갔다.
그 죽음들 중에서 장수 1위를 꼽자면 단연 ‘외로운 조지’이다. 조지는 남미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던 코끼리거북, 나이는 100살쯤으로 추정된다. 그 종의 평균수명이 200살이고 보면 국립공원이라는 인위적 환경에서 산 조지는 요절을 한 셈이다.
거북은 우리의 전통적 십장생에도 포함되는 대표적 장수 동물이다. 까마득한 역사책 속의 인물인 찰스 다윈을 직접 만난 거북이 불과 몇 년 전까지 살았다니 그 종의 삶의 길이는 실감하기 어렵다. 아득할 뿐이다.
1835년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다윈은 그곳에서 거북 세 마리를 영국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중 한 마리로 알려진 해리엇이 지난 2006년에 죽었다. 몸무게 330파운드의 이 거대한 거북의 당시 나이는 176살. 다윈과 처음 만났을 때 5살이었던 해리엇은 몇 년 영국에 있다가 19세기 중반 호주로 옮겨져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까지 맛본 후 죽었다.
해리엇은 다윈과의 인연설과 더불어 최고령 거북으로 유명했었다. 그렇다고 가장 오래 산 거북은 아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장수 거북은 따로 있다. 영국 탐험가 캡틴 쿡이 1770년대 통가 왕족에게 선사한 마다가스카르 산 거북은 1965년까지 살았다. 향년 188세.
거북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까. ‘닥터 필’로 유명한 인생상담가·법심리학자 필 맥그로 박사가 갈라파고스 거북 식의 삶을 소개한 적이 있다. 저서 ‘리얼 라이프’에서 그는 거북과 벌새를 비교했다. 벌새는 온혈동물 중 에너지소비량이 가장 많은 것이 특징이다.
벌새는 총알 같다. 어디선가 파르르 날아들면 날갯짓이 너무 빨라 날개가 안 보인다. 분당 날갯짓 횟수는 50여회, 심장 박동수는 500회가 넘는다. 성인의 심박수가 60~100회이고 보면 벌새의 작은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 지 알 수 있다.
반면 갈라파고스 거북의 심장은 거의 멈춰있다. 1분에 예닐곱 번 뛴다. 거대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여 가는 거리는 한 시간에 260미터 정도. 우사인 볼트가 10초 안에 주파하는 거리를 거북은 수십분 걸려서 간다. 에너지 소모량이 적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수명과 직결된다. 벌새의 평균 수명은 6~12년, 거북의 평균 수명은 177년이다.
닥터 필이 말하려는 요지는 자명하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동동거리며 사는 삶, 심장을 콩닥거리며 긴장해서 사는 삶이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이다.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거북을 닮으라는 말이다.
요즘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증권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39살인 그가 연례총회 등 주요 행사들에 수주 간 불참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강 이상설이 뒤따르고 구글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50대 젊은 나이에 사망한 전례가 있고 보면 이들 대단히 야심차고 혁신적인 IT 거물들의 건강문제는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주의, 끝없는 실적부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감 - 스트레스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조건들이다. 긴장의 끈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다 보면 어느 순간 탈이 나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허둥지둥 출근해 긴장 속에 일을 마치고 서둘러 퇴근해 저녁 준비하고 아이들 먹이고 숙제 봐주고 재우고 …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몇십배 혹은 몇백배 빠른 속도로 돌려보면 어떨까. 벌새의 날갯짓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바로 벌새의 삶이다.
며칠 후 독립기념일을 기해 미국은 여름휴가 절정기를 맞는다. 경제적으로 빠듯해도 휴가만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미국가정들이다. 반면 많은 한인가정 특히 자영업 가정에서 휴가는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이다. 부모는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원에 간다. 돈이 없어 아이들을 학원에 못 보내는 부모들은 “우리 아이만 뒤지는 게 아닌가” 불안해 속을 태운다. 부모에게는 휴가가 없고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삶의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지나고 보면 아이가 방학 동안 학원에 가고 안 가고는 별 차이가 없다. 그 보다는 큰 틀, 바른 가치관과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심장 콩닥거리며 아등바등 사는 벌새가 될 것인가, 느리지만 오래 가는 거북이 될 것인가 - 휴가 가서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해보자.
권 정 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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