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엮여 ‘리만 브라더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최측근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의 대표적 신자유주의자이다. 그는 장관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신념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강 전 장관은 대규모 감세안이 대기업과 고소득층만을 위한 것이라고 야당이 비판하자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오래 존속되기 힘들다”며 맞받아친 적이 있다. 답변의 요지는 한마디로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는 누진세는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개인들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다 보면 결국 전체의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것이 지난 수백년 동안 경제학을 지배해 온 논리였다. 여기에다 진화론에 뿌리를 둔 적자생존론까지 더해지면서 경쟁이야말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는 주장이 수세기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정작 진화론을 처음 발표한 다윈이 이런 입장에 동의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그는 자연에서 다양한 상호부조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했으며 노예제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나타낸 적이 있다. 다윈의 의도와 달리 적자생존론은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강자의 논리로 변형돼 다듬어진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 이 주제를 둘러싼 논쟁은 라운드를 거듭하며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인간은 서로 협력하는 존재라는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꼭 개인적 이익만이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의와 공평이라는 가치가 우리들이 내리는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입증한 대표적 실험이 ‘최후통첩게임’이다.
여기에 A라는 제안자와 B라는 반응자가 있다고 하자. 둘은 생면부지 관계다. A는 20달러를 자신과 B가 어떤 비율로 나눌 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B는 다만 A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만 있다. B가 거부하면 두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익추구만이 절대적 목표라면 A가 19대1의 비율을 제안하더라고 B는 오케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돈 1달러라도 갖고 가는 것이 빈손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제안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가령 14대6 같은) B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제안을 거부해 A를 처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은 윤리적 사유가 가능한 존재로 조금씩 진화해 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서로 간의 협력을 가능케 한 것은 이런 진화의 결과물이었다. 또 그래야만 온갖 위험과 위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세기 러시아의 철학자인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젊은 시절 왕정에 대항해 투쟁하다 투옥됐다. 2년 후 그는 친구와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도와준 덕분에 극적으로 탈옥할 수 있었다. 평생 투쟁하고 행동하는 삶을 산 그는 말년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상호부조: 진화의 한 요소’라는 제목의 책을 남겼다. 상호부조가 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이 책은 예언적 저작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LA 통합교육구는 예산난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9,000여명의 교사, 간호사, 카운슬러 등에게 해고될 수 있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그러자 통지를 받지 않은 교사들이 해고위기에 몰린 동료교사들을 일부나마 구해 보자는 뜻에서 자진해서 무급휴가를 가기로 결정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강만수 전 장관은 누진세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지만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고 나서는 일부 억만장자들의 행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들이야말로 상호부조가 ‘부자’라는 자신들의 종을 보존하고 더욱 진화시키는 길임을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경쟁과 상호부조라는 두 개의 레일 위를 달리는 존재다.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혹은 비이기적) 유전자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하면서도 때론 협력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진화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오래 갈 수 없다던 강 전 장관의 지적은 옳다. 그리고 무한경쟁과 기득권 보호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던 그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어떤 정책적 실패를 초래하는지 몸소 보여주기까지 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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