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골렌 루아얄이란 이름을 기억하는가. 2007년 프랑스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다. 네 아이를 가진 그녀에게 당시 프랑스 언론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를 안 가지려는 세태다. 그런데 네 아이의 어머니이고 또 프로페셔널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후보까지 됐기 때문이다.
루아얄의 네 자녀는 모두 사생아다. 그리고 아버지가 각기 다른 것으로도 보도됐다. 그 사실은 그러나 전혀 문제가 안 됐다. ‘그게 그래서 무슨 상관인가’- 그것이 프랑스적 정서이므로.
유럽이 금융위기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요즘 그녀의 이름이 또 다시 들먹여지고 있다. 대통령 후보시절 동거하던 남자가 대통령이 됐다. 프랑수와 올랑드다. 루아얄과 헤어진 올랑드는 기자출신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란 여자와 연인 사이가 됐다.
엘리제궁의 안주인이 된 그 발레리가 올랑드의 옛 애인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옛 애인과 현 동거녀 간의 공개 스파링, 이 신판 장미전쟁으로 프랑스 언론은 꽤 바쁘다는 보도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직자는 거의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혼잡한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신부가 지나가면 존경의 표시로 길을 양보했었다. 더블린의 대주교의 말은 그 자체가 법이었다.
오늘 날 아일랜드에서 성직자(priest)란 단어는 위선자란 말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심한 경우에는 어린이 성폭행자(chid abuser)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들린다.
벨기에의 한 유서 깊은 수녀원은 머지않아 자녀가 없는 커플을 위한 고급 아파트로 개조될 예정이다. 개발업자들은 그 수녀원을 차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80대의 수녀들이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별개의 에피소드들이다. 그러나 그 바탕그림은 한 가지로 보인다. 기독교 전통과 멀어진 세속화 된 유럽이다. 거기서 빚어진 사회의 단편들 단편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체(EU)가 탄생하고 그 헌법이 제정됐다. 수 만자로 이루어진 그 헌법 전문에 기독교(christianity)란 단어는 한 마디도 들어가지 않았다. 교회의 ‘맏딸’로 불리던 프랑스다. 그 프랑스에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도 안 된다.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독일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유럽에서 신, 하나님은 죽었다(God is dead)’-. 기독교문명의 발상지다. 자체가 거대한 교회였다. 그 유럽이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기독교를 스스로 방기한데서 나온 소리다.
“과거를 망각하고 있다. 동시에 혐오하고 있다. 고의성 역사 건망증에 걸린 것이 유럽으로 그 병 증세는 기독교 혐오증세로 전이되고 있다” 스스로의 문명을 조롱한다. 그 뿌리를 부인한다. 유럽이 보이고 있는 이 같은 정서와 관련해 유대계 법학자인 J. 웨일러가 내린 진단이다. 교회를 버린 유럽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렇지만 일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직까지 심한 자각증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심각한 질병이 이미 내부에 깊이 침투했다. 그걸 알고 있다. 그러니 그 날이 오기까지는…’- 그런 초조감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물질계를 초월한 종교적 믿음이 없을 때 현재의 삶만이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겨야 한다.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소비하는 거다. 눈과 귀와 혀 등 육체가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경험해 보는 거다.
문제는 소비든 자극이든 만족은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가. 개인도, 정부도 모두 과소비의 광풍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영화는 더 폭력적이어야 하고 선정적이다 못해 변태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현재의 생활수중 유지는 너무 중요하다. 나에게 부여된 자격(entitlement)가 침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국가부채는 따위는 내 알바가 아니다. 그리고 자녀는 그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삶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유럽이 난리다. 벌써 몇 년째인가. 그 유럽의 경제위기가 이제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다. 그리스 재선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유럽 금융위기가 보여주는 보다 큰 그림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유럽의 몰락이다. 그리스의, 스페인의 국가부채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세계의 금융시장은 점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브라질, 한국 등 경제 신흥국의 국채가 양호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나. 수세기 동안 세계의 정치, 경제를 지배해온 유럽의 파워가 결정적인 퇴조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몰락의 보다 근본적 배경에는 정치, 경제적 문제 이전에 영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세기의 최대 사건이 공산주의의 몰락이라면 21세기의 최대 사건은 기독교 전통을 버린 유럽의 몰락이 될 것이다.’- 누가 한 말이었던가. 그 예언이 새삼 귓전을 때리는 느낌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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