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미국의 현실을 바쁘게 살다보면 조국의 실정에 간혹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 미디어에서 접하는 얘기들이 엉뚱하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꼭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잠시 ‘소홀하던’ 사이 한국의 사정은 많이 달라져 있고 미디어에는 엉뚱하고 생소한 말들이 난무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우선 떠오르는 말은 ‘가카빅엿’이다. 지난 해 말 40대 초반의 현직 판사가 대통령을 조롱하는 ‘가카’라는 말에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자주 쓰던 (시쳇말로 ‘엿 먹인다’는 뜻을 강조한) ‘빅엿’이란 말을 붙이고 페이스북에 올려 파문을 일으킨 표현이다. 그 즈음 또 다른 소장 판사는 한미 FTA를 반대하면서 대통령을 ‘뼛속까지 친미’라고 표현하여 물의를 빚었었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미디어에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경기동부연합’이었다. 미주 한인들로서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할 말이다. 4월 국회의원선거 당시 진보성향 야당인 통합진보당의 공천 및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실세 주류파를 가리키는 말로 원래 1990년대 운동권 조직인 전국연합의 경기동부지역연합을 칭하는 말이었다. 이념적으로는 민족해방전선 및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민노당)이 창립될 때 경기동부연합이 이에 합류했고, 이번 총선 때는 민노당과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심상정/노회찬의 진보신당이 결합하여 통합진보당을 만들었을 때 이정희 당대표를 배출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이석기, 이적단체 활동으로 수배됐던 김재연 비례대표 의원도 ‘경기동부’로 분류된다.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자주 나오는 말은 ‘종북(從北) 주사파(主思派)’라는 단어다. 주사파란 1980년대부터 대학가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남한의 국가기강을 흔들던 골수좌익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거기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같이 쓰이고 있다. 이들은 애국가 부르기는 거절하고 북한을 찬양하며 김일성 초상화 앞에 머리 숙이고 무릎 꿇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 등을 외치면서 미군 장갑차사고, 미국쇠고기 수입, 미군기지 이전, 천안함 사건, 한미FTA 등 사사건건 미국과 친미를 걸고넘어지는 반면 헐벗고 억압받는 북한주민의 실상은 외면하고 있다.
단순히 북한과 친한 정도가 아니라 북에 복종하며 북을 쫓고 따르는[從] 사람들이기에 종북(從北)이라는 말이다. 이와 연관되어 ‘북한원정출산’이라는 말도 나돈다. 역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얘기인데 황선이라는 비례대표 의원이 지난 2005년 만삭의 몸으로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 기념일에 평양을 방문했다가 제왕절개로 출산한 일을 이르는 말이다.
황씨는 “당시 의사가 갔다 와도 된다고 했다” “갑자기 진통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출산했다”고 말하지만, 그가 1998년에도 북한의 8.15 축전에 불법으로 참가해서 2년형을 받았다는 점, 그의 남편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9년간이나 쫓기다가 붙잡혀 징역을 살았다는 점, 그리고 10월10일 노동당 창당일에 맞추어 10월10일 10시에 제왕절개를 했다는 점 등에서 종북 인사의 계획된 방북출산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매카시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원래 1950년대 미국에서 진보주의와 좌파성향 인사들을 근거 없이 몰아냈던 극단적 반공주의를 가리키던 말인데, 지금은 정당한 근거 없이 배신, 변절, 반역, 음모, 매국 혐의로 몰아붙이는 이른바 마녀사냥 같은 부당행위를 의미한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친북좌파 인사 임수경이 통합진보당의 종북 주사파인 이석기, 김재연, 황선 등과 함께 국회에 진출하게 되자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는데, 민주통합당의 이해찬 대표가 이를 두고 매카시즘의 공격이라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제1야당의 대표인 그가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고 여기에 간섭하는 건 외교적 결례다”라고 했다는데, 외교관계도 없는 북한에 대해서 ‘외교적..’ 운운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직도 북한에 대해서 무언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좌우간 지금 한국의 정치현실은 어지럽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말들이 등장하여 우리를 다시 어지럽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석정/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