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대학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댄 어라일리 교수는 이스라엘에서 자란 유태인이다. 그가 어느 글에서 유태인 조크를 소개했다. 회당 밖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남자 이야기이다. 남자가 랍비에게 하소연을 하자 랍비는 이런 조언을 했다.
“다음 주 예배시간에 맨 앞줄에 앉으세요. 그리고 십계명을 암송할 때 뒤를 둘러보세요.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라’ 부분에서 당신 눈을 똑바로 못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가 범인입니다.”
그 다음 주 예배 후 랍비는 궁금해서 물었다 - “어때요, 효과가 있었어요?” 남자가 대답했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이,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 부분에서 퍼뜩 자전거를 어디에 두었었는지 기억이 나더군요.”
십계명 같은 도덕률을 자주 상기하는 것이 도덕성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어라일리 교수는 이 조크를 소개했다. 양심이 나른한 반수면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한 지금 위의 조크는 오히려 향수를 느끼게 하는 측면이 있다. 십계명 구절로 가책을 느끼고 눈을 바로 못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순박한가. 사람들의 양심이 보편적으로 맑던 소박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거짓을 행하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죄질이 나쁠수록 더욱 뻔뻔해지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주 무죄로 풀려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새삼 확인해주는 우리 시대의 도덕 기상도는 흐림, 잔뜩 흐림이다.
에드워즈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변호사가 되고 상원의원, 부통령 후보에 이어 대통령 재목으로 부상했다. 그런 그가 혼외정사로 아이까지 두고 있고, 캠페인 기금으로 애인의 생활비를 댔다는 스캔들이 터지자 충격은 그만큼 컸다.
당시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허구다 … 완전한 거짓말이다, 말도 안 된다.” 그 후 그 모두가 사실이라는 점, 게다가 그의 헌신적 아내 엘리자베스가 암 투병하는 중에 바람을 피웠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보좌관의 아이로 덮어씌우려 했던 것까지 드러났다. 깨끗하고 가정적인 이미지였던 그는 알고 보니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재판결과는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선거자금법 위반 혐의를 검찰이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말이 될 뿐이다. 재판 후 그 자신 “불법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잘못을 엄청 많이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스캔들 터질 당시의 ‘완전한 거짓말’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인기를 먹어야 사는 정치인들은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마다하지 않고,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다 보니 거짓의 꼬리가 잡히는 빈도도 높다. 섹스 스캔들, 뇌물 스캔들 터질 때마다 ‘절대 아니다’ ‘기억에 없다’ ‘죄송하다’가 공식수순처럼 되어있다. 메이도프 같은 금융사기범, 학력위조 저명인사들, 스테로이드 사용한 스타 선수 등의 케이스들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도덕 기상도가 흐린 것은 이들 탁월한 거짓말쟁이 때문일까? 어라일리 교수는 몇몇 썩은 사과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거짓말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문제풀기 실험을 했다. 5분 동안 문제를 풀어 정답 개수만큼 돈을 주는 데, 평균 정답 수는 4개였다. 다음에는 문제를 푼 후 시험지를 기계로 없애고 정답 개수를 말하게 했다. 그러자 돌연 평균 정답 수는 6개로 늘었다.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자 참가자들이 약간씩 거짓을 보탰다는 말이 된다.
한편 20개를 모두 맞췄다고 주장하는 간 큰 거짓말쟁이는 별로 없었다. 수가 적어서 이들로 인한 손실은 수백 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수천의 보통사람들이 한 두 개씩 정답을 속임으로써 생긴 손실은 수천수만 달러에 달했다. 자동차 보험, 의료보험 청구 시 일상적으로 하는 자잘한 거짓말들이 모여서 보험료가 올라가는 이치이다.
우리는 매일 외출하면서 집의 문을 잠근다. 누구를 경계하는 것일까. 어느 열쇠공의 분석에 의하면 인구의 1%는 절대적으로 정직하다.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또 다른 1%는 절대적으로 부정직하다. 문이 잠겨있어도 열고 들어가 훔친다. 자물쇠는 의미가 없다. 자물쇠가 필요한 이유는 나머지 98%, 보통은 정직하지만 견물생심이 발동하는 대부분의 우리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흐림’은 아마도 ‘내 탓’일 것이다.
권 정 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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