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설에는 비익조라는 새가 있다.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암수가 항상 나란히 한 몸이 되어 날아간다는 새이다. 새는 둘인데 하나처럼 붙어 다니니 일심동체 - 남녀의 지극한 사랑·부부의 연을 상징한다. 그렇게 ‘둘(2)이 하나(1) 되자’는 의미로 가정의 달에 만들어진 날이 5월21일 ‘부부의 날’이다.
전설의 새는 같이 날아 세상의 끝까지 가겠지만 인간의 부부들은 ‘하나’가 쉽지 않다. 상처 주고 상처 받고 실망하고 원망하다가 같이 날기를 포기하는 부부가 두 커플 중 하나 꼴이다. 특히 인생의 황혼에 다 늦게 헤어지는 케이스는 점점 늘고 있다.
지난 해 초 LA 동부지역에 사는 한 남성독자의 이야기를 칼럼에 쓴 적이 있다. 환갑이 갓 지난 그분은 “환갑날 혼자 밥을 먹자니 너무나 참담했다”고 말했었다. 결혼생활 33년의 아내가 집을 나간 직후였다. 여고동창회 임원인 아내가 동창회 일로 외출이 잦아 마찰이 있었을 뿐 부부사이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 그분과 통화를 했는데, 그의 아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1년 반을 혼자 살면서 그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고 했다. 자상한 아빠, 가정적 남편으로 평생 성실하게 살았는데 아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LA에 사는 60대 후반의 한 남성도 비슷한 케이스이다. 연애결혼해서 34년 오순도순 잘 살았다고 믿었는데 5년 전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처가 식구 문제로 가끔 다툼은 있었지만 그게 이혼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그는 지금도 생각한다. 아내가 변호사에게 밝힌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였다.
70년대 초 이민 와서 부부가 합심해 열심히 일했고 자녀들도 잘 성장했는데 아내가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그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황혼이혼의 특징은 주로 여성이 주도한다는 것, 그리고 혼외정사, 도박, 알콜 중독, 가정폭력 등 가정파탄의 원인이 될 문제가 없는데도 아내가 이혼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상 못했던 남편들에게는 잔인할 정도의 큰 충격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남들이 그 사정을 헤아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중·노년 한인여성들을 보면 가슴에 쌓인 게 많다. 그런 답답함이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의 ‘남편 조크’들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남편이 심장마비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사망했다.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침대를 영안실로 옮기는 데 죽었다던 남편이 되살아났다. “여보, 나 살았어!”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내는 못 들은 척했다. 침대가 영안실 문 앞까지 가자 남편은 있는 힘을 다해 “여보, 나 살았어!” 소리쳤고 그때 아내가 하는 말. “의사가 (당신) 죽었다잖아!”
이런 조크를 젊은 여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생활 수십 년 된 여성들은 깔깔 거리고 웃는다. 남편들의 못 말리는 고집과 독선, 손 하나 까딱 않고 시키는 버릇, 나이 들수록 느는 잔소리 속에서 오랜 세월 살고 나면 이런 조크를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남가주의 한 60대 여성은 남편을 ‘미스터 줘’라고 부른다. 남편이 입만 열면 ‘밥 줘’ ‘물 줘’ ‘커피 줘’ ‘과일 줘’ … ‘줘, 줘, 줘’이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 심부름 수십년 하다보면, ‘이제 그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남가주에서 미용실을 오래 경영해온 60대 초반의 여성은 중년여성이 집 나가는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집을 나가는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요. 꾹꾹 눌러두고 있던 게 어떤 계기로 터진 것이라고 봐요.”
미용실에서 많은 여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온 그는 “부부 간 문제는 사소한 데서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생일이건 결혼기념일이건 카드 한 장 없는 무심함, 남들 앞에서 아내를 무시하는 말투 등 필경 남자들은 의식도 못할 사소한 것들이 아내들의 가슴에는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다.
이민1세 중년가정의 고질적 문제는 남성들의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다. ‘갑옷 입은 장군’이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다. 갑옷 같이 굳어있는 감성, 장군처럼 떠받듦만 받으려는 태도이다. 정서적 교감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아내들에게는 종종 상처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는 ‘한국인 아내와 중국인 남편’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의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부부는 이인삼각 장거리 경주선수이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가 불편한지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완주는 어렵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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