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만능주의자들이 종교적 신념처럼 내세워온 “성장은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주장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각종 정부통계와 학술연구들은 시장의 자율에 경제를 맡겼던 지난 20여년 동안 소득불평등과 빈곤이 급속히 악화돼 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때 번영과 기회의 나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미국은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의 부의 불균형과 빈곤문제를 안고 있다는 오명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는 경영자 299명의 봉급을 합치면 평균 수준 연봉을 받는 근로자 10만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작금의 높은 실업률이 꼭 경기 때문만은 아님을 뒷받침해 준다.
소득격차가 점차 손쓰기 힘들 정도로 벌어지자 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처방들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가 소리 높여 외치는 부자증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꺼내간다고 해서 당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소득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생활수준을 끌어 올리는 실질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현재 연방정부가 정하고 있는 시간 당 최저임금은 7달러25센트(캘리포니아는 8달러)이다.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능력을 지키면서 가족을 지속적으로 부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최소한의 생존 임금이다. 하지만 현 최저임금은 취지와 달리 최소한의 생존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뉴올리언스 로욜라 법대의 빌 퀴글리 교수는 던지는 퀴즈문제 하나를 풀어보자. “연방 주택도시개발부(HUD)는 주거를 위한 렌트비가 소득의 30%를 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미국 내 3,068개 카운티 가운데 최저임금의 30%로 원베드룸 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이 퀴즈의 정답은 전체의 0.6%에 불과한 단 19개 카운티이다. 그나마 이 가운데 8개는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카운티들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좁은 임대 아파트 얻기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투베드룸 아파트에서 공과금을 내면서 살 수 있으려면 최저임금이 18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퀴글리 교수의 계산이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치의 임금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미국의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은 꾸려갈 수 있었다. 1950년도의 최저임금은 70센트였다. 당시 원베드룸 아파트 렌트비는 평균 42달러로 근로자들이 56시간 일하면 낼 수 있는 액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110시간을 꼬박 일해야 전국 평균 렌트비인 729달러를 감당할 수 있다. 이것도 전국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지 LA와 뉴욕 같은 대도시 근로자들에게는 어림없는 얘기다.
최근 탐 하킨 연방상원의원(민주, 아이오와)은 연방 최저임금을 앞으로 2년 반에 걸쳐 현재의 7달러25센트에서 9달러80센트로 35% 올리는 안을 제출했다. 이 안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간에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진보는 근로자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면 지출도 따라 늘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반면 보수와 기업들은 경제가 나쁜 지금 시기에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해고와 구인 기피 등으로 오히려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중립적 입장의 경제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과 실업률 간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부자의 돈은 밑으로 흘러내려 모두를 살찌운다’는 낙수효과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은 부자의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거지가 아니다.
보수 정치인들은 복지수혜에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낸다. 입만 열면 ‘자립’ 타령이다. 그러면서도 자립하려는 근로자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해 주자는 취지의 법안에는 극구 반대하며 1% 부자들의 주머니 불려주는 일에는 적극적이다. 도대체 무얼 어쩌자는 것인지 이들의 위선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똑똑 감질나게 떨어지는 낙수로는 성장의 실과가 제대로 분배될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소외계층까지 고루 적시려면 스프링클러를 돌려야 한다. 이 스프링클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 현실화 같은 정책이며, 정치와 선거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는 최저임금은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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