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커플의 결혼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동성결혼에 대한 첫 공개적 지지이자 재선을 앞둔 대통령 후보로서는 정치적 위험이 따르는 발언이다.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간의 결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대부분은 출발점이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 - 강경한 반대이다. ‘동성애’는 말로 되어질 수 없는 금기이고, 사회 어느 구석에 보이지 않게 파묻혀 있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다.
미국사회의 여론도 다르지 않았는데 반대의 저편 끝에 있던 여론의 중심축이 점점 찬성 쪽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생각의 진화이다.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미국 성인들의 의견은 찬성 47%, 반대 43%로 찬성이 오히려 많다. 불과 8년 전인 2004년에만 해도 찬성 31%, 반대 60%로 반대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큰 변화에 대해 퓨 리처치 측은 세대변화를 주요인으로 꼽는다.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20대로 진입하면서 이들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세대는 63%가 동성결혼을 찬성한다. 80년대부터 미국의 TV 드라마나 영화에 동성애자들이 자주 등장했고, 이것을 보며 자란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친구가 “나는 게이/레즈비언”이라고 밝히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이모/고모 효과’가 꼽힌다. 동성애자들이 성 정체성을 감추지 않는 추세가 되면서 가족 친척 중에 동성애자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믿고 따르던 이모/고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동성애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변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동성애 이슈는 여전히 목의 가시다. 삼킬 수가 없다. “성 정체성은 선택이 아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성적인 사람들도 동성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와 조용히 같이 살면 되지 굳이 ‘결혼’까지 요구하며 사회규범을 흔들어야 하는 가하는 비판이다.
동성결혼은 근본적으로 ‘가족’의 문제이다. 세상사람 모두에게 허용되는 ‘내 가정’ ‘내 가족’을 갖고 싶은 인간으로서 가장 근원적인 소망이 동성애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동성애 자녀나 친척을 둔 사람들은 가족인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딸의 친구 중에 동성애자들이 있는 데 그중 두 명은 한인 청년들이다. 그 사실을 딸에게서 전해들은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 부모들이 겪을 아픔이었다. 두 명 모두 엄마가 대단히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인데, 아들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마침내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길고 큰 고통이 이어질 지가 가슴을 쳤다. 아들을 생각하면, 정치적 종교적 성향과 무관하게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를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마음일 것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작가 협회가 매년 주는 상이 있다. 올해 개인에세이 부문 수상자는 다이앤 대니얼이라는 50대 초반 여성이었다. 보스턴 글로브에서 오래 일하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이 어떻게 키 6피트1인치, 신발 사이즈 12인 거구의 아내를 얻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담담하게 써서 호평을 받았다.
다이앤이 덴마크 청년 웨슬을 만난 것은 지난 2003년 초였다. 그의 미소, 잔잔한 유머, 부드러움, 그리고 유럽식 액센트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하고 2004년 10월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2개월 되던 때 남편이, 남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남편 그만하고 아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겉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속사람은 아무래도 여성이고 그걸 거부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다이앤은 혼란과 절망 속에 매일 눈물 속에 살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내게 매력을 느꼈다면 내가 뭔가 잘못된 게 아닌 가” 생각이 들고 “화가 나고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의 충격이 가신 후 그는 남편의 여성성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사람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남편 웨슬이 안면성형, 가슴성형 등 수술을 거쳐 리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돕고 지지하며 그는 지금 팔자에 없는 ‘동성결혼’을 하고 있다. ‘가족’이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노예해방, 여성해방이 세상의 근본을 파괴한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사회적 ‘목의 가시’였다. 이제 성적 소수계의 해방이 사회가 소화해야 할 ‘목의 가시’로 떠올랐다. 동성애를 자연(신)의 섭리에 대한 도전으로 볼 것인가, 눈을 돌려 그 개개인의 아픔을 먼저 볼 것인가. 사회도 개인도 ‘가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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