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수비수로 NFL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니어 세이아우가 지난 주 자살로 생을 마감해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USC 출신의 세이아우는 20년 간 프로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라인배커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라운드에서는 투지가 넘치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줄 알았던 그에게 팬들의 인기가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자살 원인을 놓고 많은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선수시절 입은 반복적인 뇌진탕이 자살 충동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확한 동기는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은퇴 후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심리적 어려움이 극단적 선택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세이아우는 그저 그런 프로선수가 아니었다. 얼굴과 이름 하나만으로도 미국인 모두가 알아보던 수퍼스타였다. 어린 시절 풋볼에 뛰어든 이후 은퇴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찬사와 스팟라이트의 연속이었다.
수퍼스타 선수들의 정신세계에 대해 한 정신분석학자는 “환상의 나라에 살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고 비유한다. 인기와 찬사에 장기간 노출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이런 환경에 맞춰진다. 아드레날린은 과다할 정도로 분비되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들에게 은퇴란 상상하기 싫은, 외면하고 싶은 무엇이 된다. 하지만 현역에서 내려와야 하는 차가운 현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세이아우는 샌디에고 차저스에서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했지만 커리어 막바지에는 마이애미와 뉴잉글랜드에서 몇 시즌을 뛰었다. 이 과정에서 세이아우는 은퇴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기를 몇 차례 되풀이했다. 이것은 그가 은퇴 이후를 상당히 두려워했음을 짐작케 해준다.
힘과 인기를 지니고 사람이 그것을 놓게 되면 한동안 정신적 혼란과 우울증을 겪는다. 바로 ‘스팟라이트 금단증세’이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인기 연예인들이 인기를 잃고 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은 것은 상실감을 이기기 못하기 때문이다.
스타들과 권력자들이 훨씬 심하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라고 이런 증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은퇴자들이 밝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공허함이다.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그리고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 등이 얽히면서 혼란스럽고도 슬픈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비하나 훼손감 없이 긍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려면 삶의 기어변속이 부드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은퇴를 먼 훗날의 일로만 치부하려 들지 말고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에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삶이라는 자동차의 엔진이 꺼지거나 요동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007년 9월 알래스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알래스카 항공의 전 CEO 브루스 케네디에 관한 기사가 떠오른다. 케네디는 1979년 CEO에 취임해 알래스카 항공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스타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53세가 되던 1991년 돌연 사임했다.
시애틀의 한 일간지 기자가 왜 한창 나이에 갑자기 사임을 결심했느냐고 묻자 그는 “성공에서 의미로 삶을 전환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It’s time to switch from success to significance)
이라고 대답했다. 케네디는 알래스카 항공을 떠난 후 중국 벽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선교용 경비행기를 개발하는 일에 헌신하다 2007년 6월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성공에서 의미로’라는 말 속에는 삶의 기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지미 카터는 백악관을 나온 후 봉사와 외교로 삶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으며 여배우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난민구호에 여생을 바쳤다. 이들과 달리 세이아우는 기어 변속에 큰 애를 먹었던 것 같다.
시인 나희덕은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썼다. 일단 현역에서 내려오면 또 다시 높이 오르기는 힘들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는 일은 그렇지 않다. 아니, 더 높이 오르지 못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깊이 들어가는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페라리 인생’과 ‘캠리 인생’을 구분 않는 이런 삶의 원리만 기억해도 한 때 잘나갔던 과거로 인한 금단의 고통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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