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2월부터였다. 성분이 전혀 다르다. 아니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두 사람이 잇달아 미국외교의 전초기지로 피신해온 것이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왕리쥔이다. 주군(主君)인 충칭시 공산당 서기장 보시라이의 후광을 업고 조직폭력배 제거와 정적소탕에 가차 없는 잔인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정치적 대부의 노여움을 샀다. 뒤에 알려진 일이지만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부인이 관련된 영국인 사업가 살인사건을 수사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충칭에서 200마일이나 떨어진 청도의 미영사관으로 황급히 달려가 신변보호를 요청했던 것이다.
그 해프닝은 상당한 충격파를 몰고 왔다. 보시라이가 낙마했다. 그의 부인은 살인혐의로 체포되고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전례 없는 암투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왕리쥔은 왜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을까. 중국 공산당 간부들에게만 배부되는 내부문건에는 미국은 여전히 적(敵)으로 규정돼 있다. 그 중국 공산당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최후의 피난처로 미 영사관을 선택한 것인가.
등샤오핑의 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저마다 유학 등을 명목으로 자녀들을 미국에 머물게 하고 있다. 그리고 사들이는 것이 미국의 부동산이다.
공식적으로는 결코 미국을 찬양하거나 두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른다. 최소한 겉으로라도. 그러나 사적으로는 여전히 자녀들을 하버드에 유학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그리고 신변에 위기가 발생해 숨을 곳이 없을 때 미국영사관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중국공산당 지배체제를 공산당 간부 자신들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최후의 피난처로 선택한 왕리쥔의 책략은 결국 옳았다. 미국망명이 허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중국 권력승계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 두 번째 인물은 천광청이다.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인 그는 ‘한 자녀 정책’에 따라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여성들을 대변해 중국 당국에 저항해 싸워왔다. 그런 의미에서 왕리쥔과는 적대관계에 있어 왔다.
그 대가로 지난 2006년 4년 3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2010년 석방 후에도 뚜렷한 혐의도 없이 가택연금 상태에서 외부인과의 접촉이 금지돼왔다. 그런 그가 지난 달 연금 중이던 산둥(山東)성 자택을 극적으로 탈출해 베이징으로 잠입했다.
인권운동 변호사, 그것도 당국으로부터 끊임없는 감시를 받아온 중국의 인권운동가에게 있어 베이징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어디일까. 또 그의 신변보호를 책임져줄 적임자는 누구일까. 미국의 외교공관이 그 답이다.
6일간 미국대사관에 머물렀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당국자들의 협상 끝에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신병을 놓고 한동안 혼선이 오가는 가운데 밀고 댕기는 협상은 계속됐다. 결국 천광청은 본인 희망대로 미국으로 가게 됐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천 변호사가 유학을 위해 출국하려면, 중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에 따라 정상 경로로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미·중 양국은 사전 협상을 통해 ‘정치적 망명이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해 미국으로 출국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중국은 체면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의 미국행을 허용한 것이다.
미국의 사과까지 요구하던 중국은 왜 이토록 신속히 사태봉합에 들어간 것인가.
“천광청 미 대사관 피난사태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최악의 타이밍에 발생한 정치적 악재다. 그가 계속 국내에 남아 미 대사관의 보호아래 인권문제에 발언을 할 경우 이는 부싯깃 통(tinderbox)이 될 수도 있다.” 포브즈지의 분석이다.
보시라이 사태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여론이 말이 아니다. ‘태자당’의 일원인 보시라이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으로 얼룩진 안하무인격인 사생활이 드러났다. 그 결과로 ‘그래도 공산당 지도부는 청렴할 것’이라는 중국 대중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거기다가 억압받는 중국 대중의 기층(基層)의 목소리가 천광청을 통해 날로 커질 때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 닫을 수도 있다. 이런 판단과 함께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조기수습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잇단 미국 외교공관으로의 도피사태는 다른 한 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의 정치는 불확실성 그 자체라는 사실이 그 하나다. 잘 나가던 ‘태자당’ 일원이 갑자기 몰락한다. 반면 압제 속에 고통 받던 인권운동가가 어느 날 국제적인 스팟 라이트를 받는다. 이 극과 극을 달리는 스토리는 법치부재, 예측불가능의 중국정치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 변수’가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명(明)과 암(暗)이 엇갈린 두 가지 정치 드라마가 모두 미국을 변수로 전개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미국 외교공관으로의 도피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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