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의 심리는 다양하다. 다양한 심리를 작은 분야에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고지식한 사람과 융통성이 있는 사람. 사전적 의미의 고지식하다의 뜻은 ‘성질이 외곬으로 돌아 융통성이 없다’이다. 여기서 외곬은 한곳으로만 트인 길, 즉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르는 융통성이 없다란 말이다.
융통성이란, 사전적 의미에선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금전과 물품 등을 돌려쓰는 성질’이라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고지식한 사람은 원리원칙에 결백성을 가진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예외를 두며, 상황에 따라 처신을 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장자>의 ‘양왕’편에 보면 백이와 숙제가 나온다. 둘은 형제로 중국의 주(周)가 나라를 일으켰을 때 고죽이란 곳에 살고 있었다. 주가 폭정으로 나라를 어지럽히자 벼슬을 마다하고 “주(周)와 함께 살며 몸을 더럽히는 일은 이를 피하여 우리의 행위를 깨끗하게 지키는 것만 못하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끝내 굶어 죽는다. 부귀와 영화를 마다하고 절의를 지키려 굶어죽기까지 한 이 두 사람의 고지식이야말로 대대로 충절의 대명사로 불리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반대로 평하는 사람도 있다. 죽기까지 할 용기로 폭정을 일삼는 군주와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켜 백성을 잘 살게 하였더라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않았나하는 평가이다.
<사기>에 보면 한신장군이 나온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 때 그의 가문은 멸문되나 겁쟁이처럼 처신한 한신만 살아남는다. 문전걸식하며 살던 어느 날 동네 건달이 자기 가랑이를 지나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한다. 건달 한 명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진시황이 자신을 죽일 수 있어 그의 가랑이를 지나간다. 진시황이 죽은 후 곳곳에선 반란이 일어난다. 그 때 한신은 초나라 항량의 군에 가담하였다 항량의 전사 후 항우의 부하가 되어 비책을 제시하나 채택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한나라 유방에게 귀순하여 크게 전과를 올려 대장군이 된다. 한신의 이런 처세를 빌어 “때를 기다리며 고난을 참는다”는 ‘과하지욕(?下之辱)’이라 말하기도 한다.
고지식을, 선천적 유전으로 타고난 사람이 있다. 또 후천적으로 환경과 교육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다. 융통성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선천성 융통성이 있고 후천적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각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 살기에 적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고지식하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목회하는 친구들이 많다. 작게는 몇 십 명에서 크게는 수 천 명에 이르는 교인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를 장 성장시키지 못하는 친구들은 대개가 고지식하다. 그런가 하면 목회를 크게 하고 있는 목사들은 고지식한 면도 있지만 융통성이 있다. 그들은 교회법대로 교회를 치리하지만 사랑을 가지고 교인들을 감싸며 목회한다.
가정이나 단체 혹은 직장도 마찬가지다. 고지식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융통성이 부족하다. 공부는 잘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 반면 원칙은 고수하되 융통성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은 것을 본다. 단체나 직장도 수장이 고지식하게 운영하려하는 곳엔 안정성은 높지만 발전이 느린 것을 본다.
<도덕경> 36장 ‘미명·은호’편에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란 뜻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강하게 불어치는 태풍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 게 갈대다. 아름드리나무들이 퍽퍽 쓰러질 때 갈대는 유연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사람이 성공한다. 성질이 급한 고지식일수록 처세술이 난감하다. 1초의 융통성 결여의 실수가 평생을 후회하게 한다. 마음의 여유가 급선무다. 융통성은 아부와 아첨이 아니다. 속으론 아무리 화가 나도 겉으론 웃을 수 있는 유연성이 사람을 사지(死地)에서 살린다. 한신처럼, 때를 기다리며 고난을 참는 ‘과하지욕’의 지혜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금전과 물품을 돌려쓰는 성질, 융통성은 너와 나에게 필수이다. 고지식과 융통성이 적절히 배합된 삶이 합리적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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