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그러니까 20세기에는 세계적으로 거의 한 주에 한 벌 꼴로 발생했다. 쿠데타를 말하는 거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러시아의 볼셰비키 쿠데타다. 무솔리니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아랍세계의 ‘바트당’정권들도 근본에 있어서는 모두 쿠데타 세력이다.
그 단골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었다. 볼리비아의 경우 1825년 독립이후 200회 이상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 쿠데타란 말은 그러나 이제 거의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했다. 후진국 정치의 대명사이자 ‘정치적 수치’의 동의어가 되어가면서다
그 말이 그런데 지난달 한동안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했었다.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최고 권력자 간에 알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국에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설이 파다해지면서.
‘북경의 정변’설은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다. 그 가운데 월 스트리트 저널은 사설까지 썼다. 권력관리의 제도화를 이루지 못한 중국에서 권력교체는 탱크가 거리로 진입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후진성, 야만성을 꼬집은 것이다.
선거인가, 점거인가. 연초부터 일본에서 들려온 소리다. 정치적 불신이 여간 심한 게 아니다. 그 결과 정당 자체가 외부세력에 의해 점거되다시피 했다. 그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선거가 아닌 점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용이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이틀 후로 다가왔다. 그 한국의 총선 과정에서 뭔가 심각한 이상 징후가 발견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북한이 김일성 100세 생일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을 쏘겠다고 예고해 세계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미국이 나섰다. 러시아도 한 마디 했다.
심지어 중국도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입도 뻥긋 않고 있다.
이유야 뻔하다. 새누리당은 색깔논쟁이 두려운 것이다. 잘못 입을 열다가는 선거용 ‘안보 장사’한다는 공격을 당할까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민주 통합당은 진보정당과의 ‘야권 연대’란 것에 금이 갈까 두려워 고개만 처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방향성을 잃은 것이 이번 총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표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다.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극좌?종북(從北)세력에게. 그 결과로 빚어진 게 외부세력의 점거상태다. 전체 지지율이 5~6%선 밖에 안 되는 종북세력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색깔 이야기만 나오면 미리 펄쩍 뛴다. 대한민국 그 자체를 부정한다. 주체사상 신봉자다. 대한민국 해군을 해적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들이 출마했다. 그래도 침묵을 지킬 뿐이다. 두려운 것이다.
여기서 엿보이는 것은 일종의 ‘쿠데타적인 현상’이다.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종북세력에 정치권이 인질이 돼 있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다.
국민을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한 동원의 수단으로만 본다. ‘나꼼수의 김용민’이라고 했나. 거침없이 쏟아대는 막말에, 상소리. 그 ‘나꼼수 김용민 현상’에서 찾아지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쿠데타적인 멘탈리티로 보여 져 하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초석은 투표제도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다. 시빌리티(civilty)에 있다. 그 단어를 영어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은 적절한 한국말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의역을 하면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공민(公民)에 걸맞은 행동양식’이라고 할까.
합리성, 정직성, 민주적 성향, 친절, 겸손, 관용, 포용에다가 선진성과 문명성의 개념도 지닌 것이 시빌리티란 뜻이다. 때문에 시빌리티는 민주의의 초석이고 시빌리티가 결여될 때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시빌리티는 이런 면에서 국격(國格)이란 말과도 연관된다.
‘나꼼수’에서 비롯됐다. 그 김용민의 독설은 민주주의 초석이 되는 시빌리티 그 자체를 말살시키려는 언어폭력이다. 그 언어폭력은 그러면 저질스런 개인 본성의 발로인가, 아니면 계산된 논리의 소산인가. 둘 다이다. 그렇지만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더 높다.
모든 것을 대립과 갈등이란 측면에서만 본다. 대화 상대로서 정치적 경쟁자란 개념은 본래 없다. 정치의 적(敵)은 말할 것도 없다. 계급의 적이든, 종교의 적이든 적은 모두 박멸의 대상이다. 극좌파의 정신구조다. 그 언어는 그러므로 독소를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제도권정치로 진입했다. 민주 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어를 바꾸지 않고 있다. 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다. 상소리를 마구 퍼부어 20대를 투표장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 앞에 당 지도부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폭력의 언어는 인간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모든 것을 불신하게 한다.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린다. 그런 면에서 ‘나꼼수 김용민’현상은 더 치명적 독소가 돨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의 해, 그 첫 라운드는 이렇게 마감되고 있다. 오는 12월 그 대회전의 시간까지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대선은 한국국민에게 있어 대재앙이다’-. 누가 한 말인가. 그 말이 불현 듯 떠올려진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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