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가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다. 하루는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 애가 다른 애를 때렸다는 것이다. 온순한 평소의 행동으로 보아 믿을 수 없었다. 큰 애에게 물어 보았더니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 하나가 좀 거친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친구가 자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두 대를 맞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주먹으로 한 대 치는 순간 선생님이 보셨다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만 걸리게 되었다고 했다. 정당방위였고 두 대 맞고 한 대 밖에 못 때려 손해를 본 셈인데 거기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혼나기까지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나는 난감했다. ‘너는 맞더라도 절대 같이 때리지는 말아야 한다. 대신 선생님께 바로 그 사실을 알려드려야 한다’라고 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사내 녀석이 자기 방어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그냥 맞고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안 되지. 이 녀석이 평소의 모습과 달리 이런 면이 다 있네. 내가 앞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 온 나는 학교에서 급우들로부터 종종 놀림을 받곤 했다. 영어가 부족했던 초창기에도 놀리는 말은 어렵지 않게 파악되었다. 키가 나보다 머리 둘 정도는 더 큰 흑인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매 시간마다 나를 보기만 하면 놀려대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때 무엇이라고 놀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참는데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그 흑인 학생이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는데 나는 긴 의자 위에 올라가 번쩍 뛰어 그 학생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쥐었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체격이 좋은 이 학생이 빠져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그 후에 생길 수 있는 일은 상상이 어렵지 않았다. 그 때 마침 나타난 체육 선생님이 구세주였다. 당장 그만두고 바로 다음 수업시간으로 가라는 엄명에 마지못해 따르는 척 했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속으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학년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하나 있었다. 이번에는 백인 학생이었는데 평소에 나를 볼 때면 웃으면서 “이 바보 같은 한국인아, 네 나라로 빨리 돌아가란 말야”라는 야유를 인사처럼 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대꾸도 안 한 채 지나쳤지만 어느 날 그냥 폭발하고 말았다.
수학 수업이 끝난 후, 이 학생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교실 벽에다 그의 몸을 밀어붙였다. 주위의 급우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 때 선생님이 급히 다가 오셨다. 평소에 얌전했던 모범생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인 것에 적잖이 당황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순응해 그 학생의 움켜쥔 옷을 풀어 주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서로 그러지 말라는 훈계 외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참지 못했던 행위가 그 당시는 그렇게 잘못된 행위로 생각되진 않았다. 나를 놀렸던 급우들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당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당시 선생님들도 별로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지나가셨다. 징계처분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엔 선생님들이 그 정도의 행동은 눈감아 주셨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져 학교 폭력은 어떤 경우에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욕설과 폭언, 정신적 괴롭힘,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도 모두 포함된다. 모욕, 협박이나 따돌림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폭력의 피해자라고 해서 자구책으로 똑같은 폭력으로 맞대항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앞서 말한 우리집 애가 주먹을 썼던 일이나, 내가 급우들의 놀림에 참다못해 했던 행위들 모두 학칙 위반으로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정서에 안 맞거나 어색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듣자하니 한국에서는 학교폭력이 큰 사회문제라고 한다.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도 제법 되고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이제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듯 하다. 내가 교육위원으로 있는 버지니아, 훼어팩스 카운티만 해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1년 이내에 폭력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문제 해결을 그냥 안일하게 학교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자기 자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들이 직접 자녀들 주변을 잘 살펴보고 챙기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따돌림이나 작은 폭력이 끔찍한 대형 총기살인사건으로 비화되기까지 하는 시대를 사는 부모의 또 다른 책임이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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