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지난겨울 주말동안 맨하탄의 뮤지엄 순례를 하며 걷기 운동을 좀 했다.
원래 보는 것은 괜찮아도 직접 하는 스포츠는 없다. 그래도 오랫동안 걷는 것은 자신있는데 겨울동안 날씨가 춥다보니 집 옆에 있는 공원에 가기도 쉽지 않았다.
추운 날 칼바람 맞으며 걷기는 힘이 들어 주말 동안이라도 걷기 운동을 해주자 싶어 간 곳이 뮤지엄이었다.메트 뮤지엄이나 모마,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간 곳은 멤버십 카드가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지구의 46억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3,600만 점 이상의 전시물이 있는 곳이다.그곳에 가면 입구부터, 천정까지 닿아있는 길이 12미터, 높이 6미터의 공룡 모형이 마중을 나오
고 해양생태관의 고래와 코끼리, 원숭이와 새 등의 박제, 그외 동물의 화석, 공룡의 뼈와 모형이 지구 생물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우주와 지구의 탄생부터 유럽과 아시아, 에스키모와 인디언, 북미와 남미, 태평양 연안 섬에 살아온 인간의 역사는 물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사자, 땅속을 파고들어 봄을 기다리는 유충, 심해의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 하나까지 살아생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앞발을 들고 적과 싸울 자세를 한 공룡이나 들짐승을 절벽으로 몰아 떨어지게 한 다음 활로 쏘아 잡아 부족의 양식을 마련한 인간이나 수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생명을 지닌 것들은 참으로 열심히 살아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날들에 비해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오늘의 우리들은 적어도 끼니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먹고 입고 자는 일들이 얼마나 편해지고 풍요로워 졌는지 모른다.하지만 행복지수는 어떨까? 아마 과거에는 일단 먹는 것만 해결되면 걸치는 것이나 잠자리는 별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소유욕이 없다보니 욕심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지구상 어딘가에는 겉으로는 국익, 내적으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여전히 총부리를 상대방 가슴에 겨누고 전쟁 중이다.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는 서로 한 푼이라도 더 갖겠다고 끊임없이 싸우고 속이고 다투고 있으니 이것 역시 총칼 없는 전쟁이다.
말로만 ‘세계 평화를 위하여’를 외치고 실제로는 내 마음의 평화도 못 다스리고 있는 것이 인간들이다. 우리 모두 불평불만이 늘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어 ‘난 왜 되는 일이 없어?’ 하는 신세한탄부터 ‘차가 왜 이렇게 막혀?’ 하는 사소한 것까지 짜증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과거에는 살아남기 위하여, 생존 그 자체를 위하여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꿈,
성공, 부와 명예를 향해 열심히 살 것이다. 그런데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어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당하듯,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하게 되어있다.
자신이 아무리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해도 그 일에 치이거나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면 그 삶은 비루해지고 비천해 진다. 우리에게 삶은 계속 된다, 그 삶은 살아야 한다. 아무리 결사적으로 살아도 안 되는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각박하고 힘든 세상살이에도 여유가 생겨난다.따스한 봄날 센트럴 팍에서 먹는 뜨거운 김이 오르는 커피 한잔과 노란단무지와 햄, 계란, 오이
가 들어간 김밥 한줄이 더없이 맛있고 흐뭇하다면, 그 소박한데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되는 것 아닌가.
자연사 박물관에 갈 때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도 있다. 부지런히 오가다보면 족히 두세 시간이 되니 그래도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도 있다.유리 진열장 너머로 생존력 하나만 꼭 쥐고서 열심히 살아온 동식물들,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았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게 산 흔적을 보면, 삶과 죽음이 뭔지 생각하게 된다. 얼마를 더 살다 가든 살아 있는 이 순간이 고마워진다. “공룡 보러 가야 하는데.....”, “날씨가 좋으니 공원 가서 걷자”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파란 싹들이 돋아난 공원으로 갈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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