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생이 SAT 시험에서 1,355점을 받았다면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었을까? 그 보다 한참 낮은 1,206점을 받은 학생은 어느 대학에 진학했을까?
점수에 민감한 한인 학부모들이라면 벌써 ‘진단’이 나왔을 것이다. 2005년 개정되기 이전, 1600점 만점의 SAT에서 1,300대 점수는 우수한 편에 속한다. 캘리포니아 학생이라면 UC 에 원서를 냈을 것이다. 1,200 전후의 점수는 좀 못한 편에 속한다. UC에 원서를 냈다면 좀 불안했을 수준이다.
SAT 기본이 1500대, 1600점 만점을 받고도 떨어지는 학생이 매년 수백명에 달하는 하버드,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에는 원서를 낼 생각도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앞의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갔을까. 첫 번째 학생은 하버드, 두 번째 학생은 예일에 입학했다. 전자는 알 고어 전 부통령, 후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다.
이들이 입학하던 1960년대 중반 SAT의 비중은 훨씬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점을 감안해도 이들의 합격은 아이비리그 입학사정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점수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점수가 다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점수의 비중을 가능한 한 낮추고 싶어 하는 것이 아이비리그이다.
아시안 권익옹호 단체가 사립명문대학들의 아시안 학생 차별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 80%의 단합된 목소리로 아시안의 정치력을 키우자는 취지로 결성된 ‘80-20’은 현재 명문대학 입학사정 관련 아시안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에 5만명이 참여하면 연방대법원에 심의를 청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 학생들은 백인 등 다른 인종보다 점수가 높아야 합격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토마스 에스펜셰이드 사회학 교수는 아시안 학생이 엘리트 대학에 들어가려면 백인 학생보다 SAT 점수가 140점 높아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입학생 전원이 SAT 만점일 수 없는 상황에서 만점의 아시안 학생들이 불합격했다면 ‘차별’이라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이비리그 입학사정에서 SAT 점수는 여러 평가부문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공부 잘하는 소수계 학생들을 밀쳐내려고 애쓴 역사는 깊다. 입학시험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하버드의 경우 1905년 입학사정 기준으로 대입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실력 있는 학생이면 누구나 입학시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미운 오리새끼들’이 밀려들면서 학교당국이 당황했다.
1908년 신입생 중 유태인이 7%, 가톨릭이 9% 그리고 공립학교 출신이 45%를 차지했다. 부유층 WASP 집안 자제들, 사립기숙학교 출신 학생들만 입학하던 학교로서는 엄청난 변화였다. 공부 잘하는 유태인 학생들이 점점 늘어 1922년이 되자 전체 신입생의 1/5에 달했다. 예일, 프린스턴 등도 상황이 비슷했다.
성적기준 심사가 ‘미운 오리새끼들’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 학교가 도입한 것이 추천서, 면접 등 개인 신상확인 절차였다. 그 과정에서 유태인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탈락, 1933년 하버드의 유태인 학생 비율은 15%로 떨어졌다.
이후 아이비리그는 학생의 능력을 포괄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1960년대 이후 하버드는 4개 부문 평가제를 도입했다. 학업능력, 과외활동, 체육특기 그리고 개인적 특징의 4가지이다. SAT 점수 등 학교성적은 입학사정에서 1/4의 비중 밖에 갖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비리그는 일종의 명문 브랜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브랜드에 맞는 학생 군을 형성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동문 자녀나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부유층, 유명인사의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합격시키고 난 후 일반 학생들을 뽑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예를 들어 고어는 입학당시 상원의원의 아들, 부시는 아버지 부시가 예일 출신이었다. 아들 부시의 딸 역시 예일을 졸업하면서 부시 가는 예일 가문이 되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생 유형이다.
아시안 학생이 명문대 캠퍼스에서 ‘제2의 유태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차별이 차별로 규명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들이 자체 입학사정 시스템을 들이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과거 ‘미운 오리새끼’였던 유태인 학생들은 지금 아이비리그 전체 학생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태인들에 대해 이제는 아무도 말을 못한다. 아시안들이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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