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산을 찾는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의 하나는 산이 조용해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산이 조용하다 함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렇다. 산을 올라갈 때 여러 사람들이 함께 했더라도 처음엔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한참 올라가다 보면 묵묵히 산길만을 따라 조용히 올라가는 모습이 되는 것을 본다. 사실 산은 조용하지 않다. 산에는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소리도 들린다. 물소리도 들리고 도토리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가끔은 썩어 부러지려는 고목나무의 마지막 비명 같은 소리도 들린다. 조용한 산 같지만 산에 가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만난다. 호연지기란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 찬 큰 원기(元氣)를 말한다.
1952년 8월29일 뉴욕주 우드스탁에서 세상에서 아주 보기 드문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곡목은 “4분33초”. 작곡가는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피아니스트는 데이빗 튜더다. 4분33초는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악장에는 “조용히”(TACET)라고 되어 있고 1악장은 33초, 2악장은 2분40초, 3악장은 1분20초로 되어 있다. 연주자 데이빗 튜더(David Tudor)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수만 명의 청중들은 어떤 연주가 펼쳐질지 기대에 찬 모습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튜더는 꼼짝 않고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몇 분 뒤 그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일어섰다. 그리고 퇴장했다. 4분33초의 연주는 이로서 끝이 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연주가 방송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됐다. 세계 음악인들은 존 케이지의 작곡에 모두가 놀라며 분노했다. 그러나 튜더의 연주엔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수만 명 청중들의 마음의 소리와 정적이라는 소리 없는 소리가 들어있었다. 존 케이지는 이 작곡을 통해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음악에 도입했다.4분33초의 연주로 영향을 받은 존 케이지의 친구이자 화가인 로벗 라우쉔버그는 소리 없는 음악의 조용함을 미술에 도입했다. 그는 작품 전시장에 아무것도 그려있지 않은 빈 캔버스만을 전시했다. 캔버스 주위엔 캔버스를 향해 있는 조명등만 있었다. 조명등에 따라 빈 화폭은 변화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그림자 등에 따라 바뀔 뿐이었다.
형형색색의 온갖 색들로 칠해져 의미조차 알 수 없이 그려진 작품들보다야 텅 빈 하얀 공간이 더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가. 비록 순 백의 공간에 비치는 조명등과 그에 따른 그림자뿐이라지만 라우쉔버그의 그림은 더 없이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소리 없는 음악과 그림 없는 캔버스 속에, 사람들의 마음이 담길 것은 분명하다.
퀘이커(Quakers)는 서양종교중 하나로 선불교와 가장 가까운 사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자신 속에 빛으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다 내면에 빛이 비추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입을 열어 짧게 간증을 한다. 참선을 닦듯 예배를 갖는 퀘이커교의 중심 사상은 보편성과 단순성과 평화주의다.
불교엔 동안거와 하안거가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참선하는 스님들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안거 하나가 약 3개월간 지속되는 시간 속에 말없이 조용히 참선을 닦는다. 지나치면서 서로 침묵으로 대면한다. 그 조용함 속에 스님들은 진리를 깨닫는다. 안거가 끝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스님들은 참선속의 깨달음을 불법으로 전한다.
산에 오르면 산의 노래가 들린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사람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으로부터 와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고향인 하늘과 땅이 먼저 존재했고 그리고 사람이 거기에서 탄생했기에 그렇다. 산과 들은 조용하지만 우리들에게 착하게 도우며 살아가라고 물소리 바람소리로 말한다.
존 케이지의 “4분33초”. 소리 없는 피아노 연주 3악장. 라우쉔버그의 텅 빈 캔버스. 퀘이커교의 침묵의 예배. 스님들의 동안거, 하안거. 한 점의 미세하고 조용한 착상(정자와 난자의 만남)속에서 위대한 인간이 탄생된다. 존 케이지(1912-1992)의 악장 위에 쓰여진 “TACET”는 라틴어로 “It is silent”(조용히)란 말이다. 유(有)가 무(無) 속에 있다.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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