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기부가 활발해진다. 1년 동안 받은 축복에 대한 자각이 자연스레 나눔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을 어려운 처지의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다.
그런데 나눔과 기부에 대해 항상 따스하면서 긍정적인 시선이 쏠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위의 동기와 의도를 순수하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이름을 드러내려는 명예욕을 의심하기도 하고 다른 무엇을 이루려는 의도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최근 안철수 원장이 자신의 보유주식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겠다고 밝혔을 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그의 기부를 순수하게 받아들였지만 정치적인 노림수로 보는 시선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을 좀 더 드러내고 싶다는 계산에서 기부를 했다고 한들 무슨 문제인가. 이들이 내놓는 돈은 여전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생명줄이 되고 위로가 된다. 명예욕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는 조용하고 깨끗할지는 몰라도 역동성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선행을 할 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가르치지만 보통 인간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고결한 기부만 이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인색해져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면 명예에 대한 욕구가 고개를 든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기부도 하면서 이런 욕구를 만족시켜 나가는 것이다.
사실 명예에 대한 욕구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밤새워 연구하고 기업인들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명예는 사회적 보상으로 작용하고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쏟는 노력은 사회를 좀 더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대형 참사나 재해가 발생하면 언론사들은 모금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기부자들의 이름을 사진과 함께 실어준다. 물론 이들이 얼굴을 내기 위해 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일부 기부자들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모금액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돈은 피해자들의 재기를 돕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그러니 기부의 동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함부로 비판할 일이 아니다. 남을 등치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번 돈이 아니라면 개인적인 명예욕과 공명심이 묻어 있다고 해서 그런 기부와 나눔에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내놓는 기부는 몇 배의 경제적 효과로 확산된다는 ‘나눔의 경제학’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돈 쓰는 유형을 너그러운 사람, 호방한 사람, 방탕한 사람, 인색한 사람으로 나눴다. 그러면서 이 가운데 재물을 잘 활용해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너그러운 사람을 제일로 꼽았다. 그가 가장 하수에 놓은 유형이 인색한 사람이다. 인색함을 방탕함보다 더 큰 악덕이라고 봤다. 그의 관점에서는 공명심과 명예욕이 동기가 된 지출이 인색함보다 훨씬 훌륭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 순환되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윤택할 때도 자기가 도움을 줄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의 말은 인간들의 삶에 왜 나눔이 필요한지를 적절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시인 안도현은 자신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의 기부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지갑을 연 사람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동기야 어떻든 냉소할 것이 아니라 박수치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 기부와 나눔이다. 그럴수록 더 많은 이들이 지갑을 열고 나눔은 확산되는 것이다. 인색한 비판자보다는 공명심에 사로잡힌 기부자가 이 사회에는 훨씬 더 유익한 존재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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