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가을 아침, 세상이 시끄럽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중에 서울 청계천변에서 어떤 이가 고기를 낚을 생각으로 한가롭게 앉아 있다. 그의 뒤로는 유리로 된 고층빌딩들이 우뚝우뚝 솟아 서울의 새로운 금융 중심지를 이루고 있고, 그 빌딩들의 아래층에는 아시아 최고의 고급 호화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회사원들, 학생들, 가족들이 걸어가고 있는 중에 청계천의 물살이 자두나무와 버드나무들 사이로 급히 흘러가고 있다. 20년 전 청계천에서 고기를 잡겠다는 멍청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지금의 이 장면이 진정 꿈같은 얘기였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의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그 첫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 기사는 한국전쟁 전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이제 금년 말 기준으로 일인당 GDP가 3만1,750달러에 달해 EU의 3만1,550달러를 앞지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은 외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짧은 시간에 세계의 부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경우이고, 그래서 많은 약소국, 개발도상국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자 경제성장의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또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도 이룩했으며 이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회복하는 유연성까지 갖췄다고 기사는 평가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발전을 찬양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혁신(innovation)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결여가 한국의 문제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정확한 답은 전문가들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대충 추려보아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대해서도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짐작되는)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는데 이를 통해서도 한국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댓글은 한국의 여러 측면에 문제점들이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를 간추려 보면 역시 한국의 교육 부조리, 재벌의 폐해, 자살 풍조의 만연, 이기주의와 편의주의, 의존성향, 획일주의 등 우리가 그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문제점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이지만 경쟁력이나 생산성은 반드시 세계 최고가 아니라는 댓글도 있다. 또 한국인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고,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고, 남이(정부가, 재벌기업이, 가족이)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해 주기를 기대하고 의존하는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교육은 혁신과 창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시험점수를 높이는 데만 열심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대학 졸업장은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기보다 이력서 장식용이지만 이를 따기 위해 학생들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고 꼬집기도 한다.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 편의주의는 무엇이든지 쉽고 편한 것만 추구하게 만들어 한쪽에서는 무엇이든지 집으로 배달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불평불만이 있으면 집단 저항으로 해결하려 드는 성향을 키워 왔고, 또 다른 쪽에서는 학생들이 어렵고 힘든 과학, 수학, 이공계를 기피하고 법대, 의대, 경영대로만 몰리고 있어 특히 과학기술 측면에서의 혁신과 창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성토도 있다. 그래서 한국은 아직껏 과학분야 노벨상을 타지 못해 온 나라가 아쉬워하고 있다고 놀려대는 댓글도 있다.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지만 파행적인 교육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남이 하면 나도 해야 된다는 강박감에 많은 한국인들이 삶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고 급기야 한국은 세계최고의 자살국가가 되었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다.
그래서 경제가 발전되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리라 기대하면서도, 무엇보다도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든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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