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미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뉴스는 정치나 경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펜스테이트의 전설적인 풋볼코치 조 퍼티노 감독의 해임 소식이었다. 펜스테이트의 수비 코치였던 조 샌더스키가 지속적으로 미성년 소년들을 성추행 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 준 가운데 퍼티노 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캔들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퍼티노는 대학 풋볼계에서 신적인 존재다. 올 85세인 파티노는 펜스테이트에서만 46년째 감독으로 재직해 오며 1부 리그 사상 가장 많은 409승을 올린 감독이다. 지난 2007년 현역임에도 대학풋볼 명예의 헌당에 일찌감치 헌액됐을 정도다. 그가 곧 펜스테이트 풋볼이고 펜스테이트 풋볼은 곧 그를 의미했다. 그런 퍼티노가 ‘미국판 도가니’ 사건에 연루돼 명예롭지 못한 퇴진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해임된 것은 409승의 대기록을 성취한 바로 다음 주였다.
퍼티노는 그냥 풋볼감독이 아니다. 그는 교육자였으며 어린 선수들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다. 풋볼이 안겨주는 유명세에 들뜨기 쉬운 선수들에게 항상 “풋볼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며 학업과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펜스테이트 선수들은 풋볼을 잘할 뿐 아니라 졸업률도 다른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퍼티노가 승패보다 더 소중히 여긴 것은 명예였다. 명문 브라운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소양 덕분인지 그는 스포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을 하지 않은 요리와 같아서 배고픔은 면해 주지만 맛은 없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감독의 이런 철학이 반영돼 펜스테이트 풋볼팀의 모토는 ‘명예로운 성공’(Success with Honor)이다.
대학 스포츠가 지나치게 상업화 되면서 많은 대학들이 이런저런 스캔들로 몸살을 앓을 때도 펜스테이트는 깨끗한 프로그램이라는 명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터짐으로써 펜스테이트는 당분간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됐다.
훌륭한 교육자이자 박애주의자로 평가받아 온 퍼티노는 왜 성범죄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일까. 문제가 불거진 후 그는 “피해 어린이들과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면서 “당시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노감독의 이런 후회가 진심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는 샌더스키의 범행 사실을 전해 듣고도 학교에 보고하는 선에서 마무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육자들과 의사들에게 성추행 관련 범죄신고를 의무화한 규정을 어겼다. 그가 보고를 받았던 지난 2002년 당시 그의 생각을 정확히 헤아릴 길은 없다. 샌더스키와의 친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자신의 명성에 흠집에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신고를 안 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퍼티노와 펜스테이트가 성공의 함정에 빠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펜스테이트에서 풋볼은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한다. 풋볼시즌 매 토요일 벌어지는 경기는 일종의 제례다. 경기 결과 하나하나에 학생들과 팬들은 일희일비한다. 그러니 이런 풋볼 프로그램을 40년 넘게 성공적으로 끌어왔다는 것은 대학과 감독에게 도취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성공에 지나치게 도취하다 보면 어김없이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도덕적인 민감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많은 성공한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이 과정을 거쳐 추락했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깨닫더라도 성공의 지속을 위해 침묵하고 합리화 하는 것이다. 성추행 사실이 대학 당국에 보고된 후 오랫동안 계속된 은폐와 침묵은 흔히 성공한 집단 안에 어떤 압력들이 존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퍼티노는 평소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위대한 풋볼 감독으로서보다 펜스테이트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터진 스캔들로 이런 소망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만약 그가 10년 전 쯤 70대 중반 나이에 은퇴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330승을 거둔 전설적인 감독으로 여전히 존경받고 있을 것이다. 명예와 성공을 오랜 세월 함께 지켜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퍼티노의 추락은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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