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맡은 일의 중압감이 심해져서 한국일보의 시론 칼럼을 중단한지도 1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만 많아서 그랬던 게 아니라, 사실 요즘은 하도 도처에 좋은 말씀들이 많아서 필자 한 사람이라도 좀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하도 청년실업문제라고 여러 군데에서 떠들고, 한국에서는 청년실업문제 등으로 분노한 젊은 세대(젊은 세대가 분노 안한 때도 있었던가?)에서 정치권 전체의 불신(우리가 언제 정치권 믿었던 때도 있었던가?)으로 정당 없는 시민후보로 포장한 신인(?) 정치인에게 몰표를 주었다는 얘기도 들리고, 또 대학에서 평생 젊은이들을 오래 가르치고 그들의 커리어에 관심을 쏟아온 사람으로서 현실을 정확하게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우선 멕킨지 컨설팅회사에서 나온 인력수급 통계 하나를 인용 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3-4년 안에 인력수요가 필요한 분야에서 대학졸업생 부족한 숫자가 150만 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지금 미국에서 산업지도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고급인력의 부족으로 해외 다른 나라로 일감들이 떠나야하는 현실이다.
우선 필자가 가르치는 곳에서의 인력수급 문제를 말씀드리자면, 컨설팅 펌이나 회계법인에서 가장 머리 아파하는 것이 좋은 졸업생들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졸업생들만 부족한 게 아니라 재학생들도, 옛날에는 다음해 여름에 쓸 인턴사원 모집을 그 전해 11월이 되기 전에 대강 끝내었었는데, 요즘은 여름방학을 앞둔 3월까지도 대학들에 사람을 보내서 구해야하는 때도 있다.
회계 쪽만 그런 게 아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 영어 잘하고 재무분석 잘하는 대학 졸업생들 아시는 분들 계시면 필자에게 소개 좀 해주시라. 한인금융권에서 오늘 내일 문제가 아니라 홍역을 앓는 것이 쓸만한 론 오피서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인재난이다. 그나마 조금 가르쳐 놓으면 딴 곳으로 가고, 월급 좀 더 주는 한인은행에서도 주류은행 쪽으로 키워 논 사람을 잃고, 하는 문제는 우리 한인금융권에서 해결해야할 안건중 하나이다.
조그만 인력시장에서 싸우느니, 우리 한인사회 차원에서 연수원 하나를 만들어 사람을 키우자고 필자가 한인은행장들께 제안한 적이 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한 문과 쪽 졸업생들이 정말로 그렇게 많다면, 그들을 모아서 매달 용돈을 주어가면서 3개월만 바짝 기본회계부터 시작해서 신용과 재무분석 훈련을 시키자는 것이다. 강사는 똑똑하다고 소문난 한인은행권의 중견 간부들과 주류사회 대학교수들이 담당하면 된다.
말하고 쓰는 기본교육이 된 젊은이들을 뽑으면, 은행비즈니스 훈련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것이 아니고, 또 그곳에서 요즘 부족한 듯한, 바람직한 한인사회의 은행가로서의 덕목도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필자의 복안이었다. 모델 커리큘럼도 짜서 보내주었다. 은행 사이즈와 론 오피서 수요의 높낮이대로 부담하면 각 은행이 부담할 재정적 지원도 얼마 크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실천을 하려니 참가하겠다는 곳의 숫자가 반밖에 되지 않았다. 성의가 없는 행장들도 있었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일이 다되면 이곳에서 자기들도 사람을 뽑아가면 되겠지, 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느 실패하고 떠난 행장은 아예 자기는 무슨 중요한 다른 일이 있는지 아랫사람에게 이 일을 밀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한인사회가 가진 문제라고 생각하고, 비전을 가지고 한인 젊은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일을 같이 걱정하면, 그리 풀지 못할 문제가 아니었다.
위에서 사람 구하기 어려운 분야를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이런 분야는 너무나 많고, 이공계에서는 취직이 더더구나 쉽다. 문과에 적을 두고 있는 대학생 아이가 있으면, 3학년이 되기 전에 어머니들은 선언을 해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밥 먹는 문제는 네가 물론 해결해야 한다”라고.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집에서 쫓아내야 한다. 이런 집안 아이들 중에 실업문제로 부모 걱정시키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대학이 취직공부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심오한 깊이와 가치를 배우는 곳이라고 취직과 상관없는 분야로 자기가 하고 싶다고 진학한 아이들은 우리의 걱정 범위 밖이니 여기에서 취급할 성질이 아니다. 실업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필자가 좀 비정하게 청년실업문제를 다룬 것 같은데, 청년실업문제에는 비정하게 다루지 않는 딴 방법이 없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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