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들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60년대 베이비붐 세대들을 말하는 것이다. 우드스톡으로 상징되는 세대였다. 반전(反戰)에. 반(反)사회가 모토였던 그들은 ‘가장 위대한 세대’로 불린 부모세대와는 달리 역사적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 회피했다.”
“…역사가 다시 전화를 걸고 있다. 오늘날의 세대는 다행히도 그들의 부모보다는 조부모세대를 닮았다. 그 도전에 감연히 응전하고 나선 것이다.”
‘9.11 세대’라는 제목과 함께 이제는 고인이 된 딘 바네트가 2007년에 쓴 글이다. 9.11세대의 한 표상으로 그는 고액의 연봉과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자원입대해 테러전선을 향해 달려간 하버드 법대 출신의 변호사를 소개했다.
9.11사태가 발생했을 때 탐 코튼은 하버드법대 3년생이었다.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 속에 스스로 물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마침내 수십만 달러의 소득을 희생시켜가면서 군장교로 입대했다. 그가 지원한 것은 보병부대 소대장이었다. 안전한 군법무관 자리도 마다 한 것이다.
“그대들의 헌신과 희생과, 놀라운 업적이 있었기에 우리의 군은 가장 위대한 세대 중의 하나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테러전쟁의 승리, 보다 안전한 미국, 그리고 중동의 평화는 영예스러운 군복을 입고 싸운 500만 9.11세대가 이룩한 공로입니다.”
이 글이 나온 지 4년 후 9.11사태 10주기를 맞아 오바마 대통령은 9.11세대에게 최대의 헌정사를 바쳤다. 9.11세대의 헌신은 미국의 역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것으로 그들의 자원과 헌신이 있었기에 비극으로부터 희망의 싹이 돋아날 수 있었다는 찬사를 보낸 것이다.
9.11세대는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성장한 세대다. 이 9.11세대는 X세대와도 구별된다. 둘 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다. 인터넷 초기세대인 X세대가 인터넷을 주로 정보 수집에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9.11세대는 인터넷을 타자와의 소통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 9.11세대는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지에서 아랍의 봄을 이끈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젊은이들과도 밀접히 연결돼 있다. 말하자면 외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세대로, 소셜 네트워크, 해외경험, 애국심을 동시에 갖춘 9.11세대는 ‘제2의 위대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괴담이 난무한다. 볼리비아 괴담에, 멕시코괴담 등 후속 판에, 후속 판을 거듭하면서 온갖 괴담이 트위터·페이스북·인터넷 등을 타고 한국사회를 휘젓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한국은 미국의 경제식민지가 된다’ ‘FTA는 인간 광우병 창궐사태를 가져올 것이다’ ‘인천공항을 대통령 조카가 관련된 외국회사에 매각하려 한다’ 등등.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그 괴담들을 그런데 20대와 30대, 그리고 스스로를 아직 청년세대로 생각하고 있는 40대의 대다수가 믿고 있다는 보도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괴담을 믿게 하고 있는 것인가. 온갖 진단이 나온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보니 의견의 쏠림이 심하게 생기고 됐다. 거기다가 트위터 등을 통한 끼리끼리의 소통방식이 더해지면서 이런 결과가 된 것 같다. 언론학자의 진단이다. 기존 가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과 부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에는 자성이 섞인 정치인의 지적이다.
2040세대에겐 출구가 없다. 암울한 현실이 바로 이들로 하여금 현실정치를 거부하게 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의 진단이다. 이들이 괴담에 귀 기울이고 또 사실로 믿는 주 원인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진다는 이야기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해도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기 일쑤라고 한다. 그러니 현실을 보는 눈이 어두울 수밖에.
그러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판단력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맞은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만 잘 살게 해준다면 만사 오케이 식의 무(無)이념에, 기성세대를 ‘꼰대’라는 말 한마디로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암울한 현실’이라는 것도 그렇다. 정말이지 출구가 없어 보이는 암울한 현실을 맞닥뜨렸던 것은 아버지 세대인 6080세대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출구가 없어보였던 그 암울한 현실, ‘6.25의 폐허’에서 일어서서 부(富)를 일구었다.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했다.
오늘날의 2040대는 그 과실을 누리고 있는 세대다. 그러면서도 그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면서 괴담만을 쫓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라니 집단적 패륜에 가깝다.
괴담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야당이 앞장서서, 종북단체를 통해, 그리고 김정일 체제 북한으로부터. 그 가운데 젊은 세대는 제 멋대로 놀아나고 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곳곳에 작두를 세우고 뛰는 무당을 방불케 하고 있는 것이다.
괴담에 날뛰는 한국의 젊은 세대. 그 모습이 어딘지 자꾸 서글프게 느껴진다. 미국의 9.11세대와 대조되면서.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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