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들 가운데 돼지만큼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동물도 없다. 돼지라고 하면 먹는 것만 밝히고 몸집이 말해 주듯 우둔하고 불결하다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성경 곳곳에서도 돼지는 더러운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돼지에 대한 편견은 아주 뿌리가 깊다.
그러나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돼지는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똑똑하고 깨끗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개의 IQ가 보통 30정도인데 비해 돼지의 지능은 50 가까이 된다. 또 많이 먹는 것을 흔히 돼지처럼 먹는다고 표현하지만 돼지는 자신에게 정해진 양을 넘어 과식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그러니 돼지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조금은 억울할 법도 하다.
지난해 한국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비참하게 죽어갔다.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어떻게 가축들을 일일이 매뉴얼에 따라 살처분할 수 있느냐는 현실론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소와 돼지들이 무참히 살처분됐다. 매몰 현장을 지켜 본 사람들 가운데는 산채로 구덩이에 묻히는 돼지들의 비명소리에 한동안 환청에 시달린 이들까지 있었다.
콜로라도 대학의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은 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심리’에 가장 정통한 학자로 꼽힌다. 그랜딘 교수는 자폐증 환자이다. 자폐인들과 동물들은 세상을 하나의 그림으로 인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랜딘 교수는 동물들의 느낌을 알아내 이것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데 누구보다 뛰어나다.
지능이 높은 돼지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예감이 아주 발달해 있다. 특히 낯선 환경은 돼지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이런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는 곳이 도축장이다. 오랜 시간 차에 실려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달라진 환경과 소음에 불안해한다. 일부 돼지들은 주저앉은 채 끌려 나오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돼지들의 이런 불안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단 도축장에 끌려온 돼지라면 도축장의 방식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먹거리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3년 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이런 도축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끌려 온 돼지들 가운데 ‘도움 없이는 서거나 걸을 수 없는’ 돼지들에 대해서는 고통 없는 방식으로 안락사 시키도록 규정을 한 것이다. 샌버나디노 카운티에서 주저앉은 소(일명 다우너)들을 잔인하게 도축하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형성된 비판여론에 따라 취해진 조치다.
육류가공업자들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주정부의 조치를 따를 경우 발생할 손해와 비용이 이유다. 도축업자들은 돼지들이 장거리 운송에 지쳐 주저앉은 것일 수도 있고 잠을 자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랜딘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이런 돼지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돼지들의 몸에서 나쁜 호르몬이 나와 육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사실이다.
돼지들의 복지를 둘러싼 이 케이스는 하급심의 법정공방을 거쳐 최근 주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며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인간복지도 요원한데 웬 동물복지냐고 면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들의 복지는 결국 인간의 복지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구제역이 기승을 부릴 당시 한국의 한 TV 방송은 프랑스의 유기농 양돈 농가를 방문 취재했다. 이곳의 돼지들은 우리에 갇히지 않는 채 주인이 곳곳에 갖다 놓은 유기농 사료를 먹으며 한가로이 넓은 농장을 돌아다니거나 풀밭 위에서 잠을 자며 생활하고 있었다. 일정 연령 이상이 되기 전에는 도축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자란 돼지고기들의 육질은 당연히 최상품이다. 다른 곳의 돼지고기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리는데도 소비자들에게 최고 인기다. 농장주는 “우리 농장의 돼지들은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그 고기를 먹는 소비자들도 행복하다. 소비자들이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자연을 지배하는 순환의 법칙이다.
미국의 선조들은 일찌감치 이런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신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그들은 이미 370년 전에 “누구도 인간을 위해 잡혀 있는 동물에게 독재적이거나 잔혹한 힘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선구적인 법규를 만들었다. 그랜딘 교수가 “자연상태에 있던 동물을 가축화 시킨 인간들은 그들을 위해 자비로운 죽음을 연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다. 육류업자들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돼지의 고통을 헤아려 줄 것인가. 주 대법원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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