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주에서 세탁소를 오래 운영해온 부부가 있다. 낯선 땅에 발 디딘 후 궂은 일 마다 않고 밤낮으로 일하고, 허리띠 졸라매며 돈을 모아 사업체를 장만한, 전형적인 이민 1세이다.
한인 자영업자 대부분이 그러하듯 부부는 지난 30년 숨이 턱에 닫게 종종걸음 치며 살아왔다. 휴가며 건강관리는 머릿속에 떠올릴 틈도 없는 ‘사치’였다. 덕분에 남매는 잘 자라 독립했고 부부는 이제 노년을 즐겨볼 만한 여유가 생겼다.
“남들 다 하는 건강검진 한번 받아볼까?”하며 한국여행을 간 것은 지난봄이었다. 자영업하면서 의료보험 없이 산 탓에 부부는 의사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의 ‘호사’ 정도로 여기며 받은 검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간암 4기이고 부인은 목안에서 암이 발견 되었다. 부인의 암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다고 한다.
부부는 지금 한국의 시골에서 요양을 하며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의 남은 날들, 부부로서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할까. 삶에 대해 어떤 후회가 있을까. 비슷한 유형의 삶을 살고 있는 한인이웃들을 돌아보게 된다.
불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8가지를 든다. 고통의 시작인 태어남과 덧없이 늙는 고통, 병드는 고통 그리고 죽음의 고통인 생로병사가 4가지 기본 고통이다. 그에 더해, 살다보면 원수 같은 자와 만나게 되고(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며(愛別離苦), 갖고 싶지만 얻지 못하고(求不得苦), 식욕 성욕 등 본능적 욕구의 지배로 인생 자체가 괴로운(五陰盛苦) 것이 합쳐져 8가지 고통이 된다.
한마디로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는 말인데 그런 고통은 집착에서 기인하니 집착과 애욕을 버리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중생으로서 살아가는 조건은 바꿀 수 없어도 마음을 바꾸면 평안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현대의학은 그런 마음의 상태를 ‘행복감’이라고 부르며 행복이 인간의 물리적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과 수명이다.
나이 ‘50’ 선을 넘어서면 부쩍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 있다. ‘죽음’이다. 죽음의 소식들이 수시로 날아든다. 평소 못 만나던 지인들을 장례식장에서 연거푸 만나기도 한다. 앞으로 5년 후 장례식장 맨 앞에 혼자 누워있을지, 문상객에 섞여 앉아있을 지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100% 보장은 못해도 확률로 미리 알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5년 후에도 여전히 문상객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는 런던의 한 대학 연구팀이 52세부터 79세까지의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총 3,800명의 참여자들을 만나 그날의 기분을 시간대 별로 4번에 걸쳐 조사하는 방식이었다. 행복하고 신나고 만족스런 긍정적 기분과 걱정, 불안, 두려움 같은 부정적 기분의 정도를 분석했다.
그리고는 5년 후 이들의 사망 여부를 확인해보니 행복감이 강할수록 사망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감의 정도가 가장 높았던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35%나 낮았다. 행복감이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을 줄이고 면역기능을 강화해 건강에 기여한다는 것은 많은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결론이다.
행복감이란 한마디로 입가에 웃음이 확 퍼지게 하는 느낌. 기쁘고 즐거워 날아갈 듯한 만족감이다. 자동차로 보면 완전 연소되는 질 좋은 개솔린 같은 것. 불완전 연소되는 나쁜 개솔린을 계속 쓰면 불순물이 쌓여 엔진이 망가지듯 분노나 걱정, 두려움, 스트레스를 수십 년 주입하면 우리 몸 역시 속으로부터 망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민 1세의 삶은 불교가 말하는 일반적 중생의 삶보다 더 고단하다. 남의 나라에서 소수계로 사노라면 ‘갖고 싶지만 얻지 못하는 고통’이 몇 배나 크고, 그만큼 생존경쟁은 치열해져서 ‘원수 같은 자들과의 만남’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이를 악물고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대부분 1세들의 삶이다. 그 대가를 종종 몸으로, 목숨으로 치른다. 주변에 안타까운 병고와 죽음이 너무 잦다.
우리 몸이라는 자동차는 순도 높은 행복감을 연료로 원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자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노년에는 행복이 수명이다. “나는 행복하다 고로 존재한다”가 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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