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6.25참전 전사자 유가족에게 한국정부가 5,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코미디 같은 뉴스가 보도됐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대가가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행정결정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연고를 찾지 못하다 뒤늦게 유가족을 찾은 전사자들에게 대한 것이라지만 이러고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들은 군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궁극적 희생’이라 부르며 존경심과 고마움을 표한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예우와 처우에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다. 이런 의식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다. 미국정부는 오래 전부터 북한과 베트남, 독일 등지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를 발굴해 오고 있다. 이것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 ‘그들이 고향에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라는 모토로 유해발굴에 자금과 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사자 5,000원 보상’에 비난 여론이 도가니처럼 들끓자 황급히 액수를 일부 현실화하기는 했지만 수십년 간 시행돼 온 이 보훈규정은 ‘궁극적 희생’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식이 미국과 얼마나 다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극구 부인하겠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근본적으로 사병들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재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징병제가 시행되면서 젊은이들은 청춘기의 소중한 시간을 국민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바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희생의 대가로 이들이 받는 처우는 너무나 형편없다. 기자는 이등병 시절 1,400원의 봉급을 받았다. 병장이 되면서 2,700원으로 올랐는데 부대 앞 가게 외상값 갚기에도 벅찬 액수였다.
형편없는 처우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등병 봉급이 1만원을 넘어선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지금은 상병기준 월 9만여원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병들이 국가에 제공하는 막중한 서비스에 비해 봉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액수이다. 국방 예산 중 수십만 사병들의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채 되지 않는다.
싸게 구입한 물건이나, 싼 임금을 주고 부리는 노동력은 결국 싼 것처럼 취급하게 돼 있다. 병영 내에서 사고가 나면 재탕, 삼탕한 대책이 발표되고 이를 근절시키겠다는 다짐이 나오지만 참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도 따지고 보면 소중한 인적자산을 값싼 인력쯤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병 처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군 지휘관들의 모습은 정말 우려스럽다. 천안함 침몰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장성과 장교들이 현역 복무 적합 판정을 받고 모두 다 복귀했다. 46명의 꽃 같은 청춘들이 허망하게 사라졌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지휘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들은 소송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군의 지휘관이라면 명예와 책임을 목숨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일반 생활인들처럼 처신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문에 책임을 진 지휘관도 없다. 일부 장성들은 오히려 별을 하나 더 달고 영전했다.
이런 대한민국 군과 대비되는 것이 이스라엘 군이다. 이스라엘 군 장교들은 전투개시 때 ‘돌격’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이들은 ‘알하라이’라고 외친다. ‘나를 따르라’는 말이다. 장교들의 전사율이 어느 군대보다도 높다. 1973년 4차 중동전 전사자들의 24%가 장교들이었다. 병영 내에서 사병과 장교의 차별도 거의 없다,
최근 이스라엘의 한 사병이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포로와 맞교환됐다. 장성이나 장교가 아닌 일개 병장이다. 이 조치에 대해 찬반은 갈렸지만 적어도 이스라엘 정부가 사병 하나하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입증했다. 이런 군대가 강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강군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휘관들부터 솔선수범하고 먼저 희생할 때 부하들은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것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또 사병들이 국가에 의해 보호받고 대접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때 전투력은 자연히 높아지게 돼 있다. 병서들에 다 나와 있는 얘기다. 그런데 대한민국 군에서는 이런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사병들은 죽어서나 살아서나 서러울 수밖에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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