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최후는 묘하게 닮 아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군 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고향 티 크리트의 지하 토굴에서 은신해 있다가 체포됐다. 무아마르 카다 피도 사살되기 직전 까지 고향 시르테에 있는 콘크리트 배수관 에 숨어 있었다.”
42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그런 카다피가 맞은 최후를 한 언론은 이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쏘지 마, 쏘지 마.” 그가 남긴 마지막 말로 전해진다. 그에게 등 을 돌린 리비아의 민중을 ‘쥐새 끼’라고 멸시했다. 그 자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육을 감행했 다. 최후의 순간 그는 그러나 그 시민군에게 목숨을 구걸했던 것 이다. 그러나 이도 허사, 뒤이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진 것은 피투성이가 된 그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카다피의 이 죽음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그 첫 번째는 리 비아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할 수 도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카다 피는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 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리비 아사태는 독재 대 반 독재의 투 쟁구도보다는 부족 간의 갈등 구 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여러 부족들이 연합하는 이런 복잡한 세력구도를 감안할 때 카다피는 죽었지만 리비아 사태 는 이제 부터가 시작이라는 관측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이다.
독재자들의 최후는 언제나 비 겁하다는 게 그의 죽음이 알리 고 있는 두 번째 사실이다. 최후 의 총알 한발이 남을 때가지 투 쟁을 계속할 것이다. 카다피가 한 말로,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 하겠다고 했다.
카다피는 나토군, 다시 말해 서방이 아닌 리비아 시민군에 의 해 사살됐다. 반(反)식민주의, 제 국주의와의 투쟁 최전선에서 피 를 뿌리겠다던 그의 호언은 헛소 리가 된 것이다. 오히려 ‘쥐새끼’ 라며 멸시하던 시민군에게 목숨 을 살려달라고 애걸하다가 최후 를 맞은 것이다.
그의 죽음은 이런 의미에서 실패한 한 아랍 독재자의 죽음 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비겁하 다 못해 비루하기까지 한.
카다피의 죽음이 보여준 또 다른 사실은 독재체제, 폭정체제 가 지닌 허구성이다.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다. 수천억에 이르는 오일 달러를 지 니고 있다. 게다가 최신예 미사일에, 전폭기 등으로 무장한 친위 대가 수십만이다. 막대한 자금과 병력이 체제유지에 든든한 버팀 목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위용에 눈이 멀어 체제 예 찬론자들이 줄을 잇는다. 과거 서방의 일부 지식인들이 스탈린 의 소비에트체제를 찬양했듯이. 그 한 케이스가 다트머스 대학의 더크 밴더웨일이다.
그는 전원이 여성인 카다피의 경호대를 독재자의 변태적 취향 이라기보다는 리비아의 여권을 신장시키려는 측면으로 해석했 다. 한국의 좌파단체가 카다피에 게 인권 상을 수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反)서방’이란 말 만 들어 가면 무조건 지원을 했다. 아이 리시 공화군에서 니카라과의 산 디니스타에 이르기까지 한 때 45개의 반 서방 게릴라 단체에 돈과 무기를 대준 것이다. 테러 도 서슴지 않았다. 1988년 미 팬 암기 폭파테러사건이 바로 그것 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폭정은 거 칠 것이 없었다. 아부 살림의 대 학살이 바로 그 한 예다. 1996년 벵가지에서 제한된 반란이 발생 하자 보안군은 아부 살림 형무소 에서 벵가지출신 수감자 1,200명 을 일시에 처형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독재자의 전형이 바로 카다피다. 수 십 년 통치를 통해 600억 달러의 돈을 해외로 빼돌 렸다. 그도 모자라 권력세습을 기도하다가 민중이 봉기하자 그 막대한 자금으로 용병을 사들여 자국민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것이 카다피의 진면목이다. 카다피 예찬론자들은 그런데도 그 폭정의 진상에 눈을 가렸던 것이다. 그 체제가 천년만년이나 갈 것 같은 기대와 함께. 그 체제 가 그러나 어느 날 허물어졌다. 민중봉기에 쫓겨 고향 시르테에 서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카다피 는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체제는 속 빈 강 정 같은 체제였다. 허무하기 짝 이 없는 것이 폭정체제라는 사실 을 카다피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것이다.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교훈 은 무엇일까. “폭정체제 통치자 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때 그 때 이(利)를 쫓아 변하는 흉 내만 낼 뿐이다. 폭정체제를 변 화시키는 방법은 그러므로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체제를 격리시키거나 체제전복을 꾀하 는 것이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 티튜트의 마이클 루빈이 내린 결 론이다. 폭정체제 통치자를 파 트너로 삼는 것은 잘못된 정책 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레짐 체인지’만이 ‘불량 국가’ (rogue states)를 지구상에서 퇴출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그건 그렇고, 카다피 다음에 무너질 독재자는 누구일까. 시리 아의 아사드일까. 예멘의 샬레일 까. 그도 저도 아니면 북한의 김 정일이 혹시 아닐까.
옥세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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