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정 희 논 설위원
남가주에 사는 한 지인은 몇 년 전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다.
전문직 여성 으로 매사에 철저한 그는 방문 에 앞서 한국에서의 일정을 꼼 꼼하게 계획했다.
아들이 한국 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터라 “이 기회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 이 컸다.
그는 하다못해 식당까지도 미리 예약을 해뒀다. 그해 4월 인사동의 한 식당에 ‘국제’ 전 화로 예약을 하자 식당측은 어 이가 없어했다. 예약하려는 날 이 12월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려요. 느긋하게 뒤로 미루면 불안해서 못 견디지요.” 시간을 분초까지 쪼개 쓰고, 남에게 뒤지는 것을 절대 못 참 고, 목표가 있으면 기어이 해내 야 하고, 야심이 있고, 그러다 보니 종종 일 중독이 되는 한 편 성공하는 사람들 - 보통 말 하는 A 유형이다. B 유형은 그와 정반대인 사 람들. 도무지 바쁜 게 없고, 무 엇이든 하면하고 말면 말고 식 이다. 스트레스 없으면 오히려 허전한 A 유형이 속을 바글바 글 끓이며 살 때 B 유형은 마냥 여유롭고 태평하다.
그래서 서 로 반대 유형이 만나면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A 유형 부 모가 B 유형 자녀를 키울 때면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예를 들어 12월 여행에 대비 해 4월부터 식당 예약하는 엄 마가 다음날 제출할 과제를 그 전날 밤에야 겨우 시작하는 자 녀를 본다면 어떨까.
속이 부글 부글 끓을 수밖에 없다. “일주 일 전에 나온 과제를 이제껏 안 하고 뭐했느냐?”고 고성이 터져 나오고, 그래도 아이가 미적거 리면 혹은 주눅 들어 제대로 못 하면 자신이 나서서 하고 마는 경우도 흔하다.
A/B 유형 분류는 1950년대 마이어 프리드만과 마이크 조단 이라는 심장전문의들이 성격과 심장질환의 상관관계를 연구하 면서 처음 시도했다. 일반 인구집 단에서 A/B 유형의 구성비가 어 떤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한인 1세들을 보면 A 유형이 압도적 으로 많은 것 같다. 한국이라는 치열한 경쟁사회 경험, 밤낮으로 일해야 자리 잡는 이민생활이라 는 환경적 요인이 그러잖아도 성 공지향적인 한인들을 더욱 A 유 형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반면 미국에서 어려움 모르 고 자란 2세들은 대개 너무나 도 느긋하다. 특히 아들들 중에 B 유형이 많아 보인다. A 유형 기질에 교육열까지 남다른 한 인부모들이 보기에는 성에 차 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부들은 그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내일이 시험인 데 9시부터 자는 거예요. 수면이 충분해야 한다나요?” “금요일 오후에 현 관 앞에 던져둔 백팩을 월요일 아침에 그대로 들고 가요. 주말 내내 책 한번 펼치지 않은 것이 지요”“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스 쿨버스를 번번이 놓쳐요. 아침마 다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해요” 주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들/딸의 그런 모습에 벌 컥 벌컥 화를 내는 남편들. 한 인남성들의 ‘욱’ 하는 기질 역 시 A 유형의 특징이다.
도무지 빠릿빠릿하지 않은 아이를 보 며“ 저래 가지고 대학 가겠어?” “저래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뭘 하겠어?” 라며 노골적으로 못 마땅해 하는 남편과 기분 상한 아이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두 배’라고 주부들은 말한다. 자녀의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 있을까? 학교 숙제든, SAT 시험 준비든, 다음달 대입원서 접수든 똑 부러지게 하지 않으 면 스스로 못 견디는 A 유형으 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전문 가들은 ‘못 바꾼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길러 주면 도움이 되겠지만 타고난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전 문의인 수잔 정씨는 말한다. “사슴 같은 아이를 호랑이로 만들려고 하면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지요” 본래 성향과 다른 것을 지나 치게 강요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감 형성에 장 애가 되고,‘ 내가 모자란 건가’ 하는 열등감에 빠질 수 있으며 심하면 아이가 부모를 피하게 된다. 유년기에 억눌린 감정이 10대 때 심한 반항심으로 폭발 하기도 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부모의 사랑의 훈육이 정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가 없지 않다. A 유형이 성취와 성공을 지 향한다면 B 유형은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어느 한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단언하 기는 어렵다.
사슴은 사슴의 몫 이, 호랑이는 호랑이의 몫이 있 을 뿐이다. 아이가 자기 자신으 로서 행복할 수 있도록, 좋아하 고 잘 하는 분야를 찾을 수 있 도록, 그래서 세상의 구성원으 로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일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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