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는 이르고/ 다시 잠들기에 너무 이른 때/ 밖에 나가야 했다, 녹음이/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제목은 ‘기억이 나를 본다’이다.
20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작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인의 작품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23세의 나이인 1954년 시집 ‘17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1990년 59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반신마비가 된 그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시를 계속해 써서 2004년 ‘수수께끼’(the great enigma)란 시집을 발표했다.80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약 200편의 시를 썼고 11편의 시집을 출간했다.
시집 한 권에 20편 정도의 아주 적은 분량이다. 시집 수십 권에 수 천편의 시를 발표한다고 노벨상을 받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전 세계 6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읽힐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시는 압축적이고 투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참신한 접근을 보여준다. 또한 이미지 묘사에 능하면서 은유(메타포)를 잘 활용해 세계를 견고하게 파고드는 힘을 보여주는 작가”라 평했다. 또 어떤 평론가는 “자연 환경을 통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한 시인”이라 말한다. 또 다른 평론가는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차분하고 조용하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시인으로 고요한 깊이의 시,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과묵한 작가”라고 평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청소년범죄자, 마약중독자, 장애인, 수감자등을 위한 심리상담가로도 활동한 바 있다.
이번 노벨문학상 후보로는 한국의 고은 시인과 시리아의 아도니스 시인 등 아시아의 시인들도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다시 유럽권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소설을 제치고 시인으로는 15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 되었다. 이로 보건데 아직도 노벨상은 아시아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의 벽을 깨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1972년 4월16일 일본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가스관을 입에 문채 숨을 거두었다. 그는 1968년 소설 <설국(雪國)>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다. 인도의 시인 타골이 노벨문학상(1913년)을 받은 후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였다. 그는 탐미주의적 소설가였으며 노벨상을 받은 <설국>은 10년간에 걸쳐 쓴 작품이다.
야스나리 뿐만 아니라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1961년 7월2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자살을 하다니!” 개인사인 사람의 종말이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를 갖고 있나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젠 한국 작가도 노벨상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고은 시인과 황석영 소설가가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이 좀 더 많이 번역되어 더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가 ‘Please Look After Mom’으로 번역돼 미국인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된 적이 있다. ‘네티브 스피커’와 ‘항복자’ ‘영원한 이방인’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씨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가 있긴 하다. 한국인과 한국계를 통틀어 노벨상은 받은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 한 명뿐이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아 한국의 이미지를 높였지만 “돈으로 산 노벨상”이란 말을 듣고 있어 그리 탐탁하지만은 않다.
뉴욕 콜럼비아대 김필립교수가 심사위원들의 우여곡절로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다시 하면 된다. 미국에 살고 있는 2세와 3세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노벨상에 도전해보라! 비록 미국시민권자라도 대한민국에 뿌리를 두고 한국의 얼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평생 동안 조용히 과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트란스트뢰메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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