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100명인 마을이 있다고 가정하자. 주민들은 모두 10층짜리 건물에 모여 사는데 보통 한 층에 16~17명씩 복닥거리며 산다. 99명이 1층부터 6층까지를 차지한다. 7층 이상의 높은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사는지 그들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7층부터 10층까지 총 4개 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이라는 사실이다. 단 한사람이 건물의 40%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머지 99명은 어떤 기분일까?
너무 많이 가진 1%와 너무 없어 고통 받는 99% -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의 슬로건 ‘우리는 99%(We are the 99 percent)’가 뜻하는 내용이다. 부의 편중이 너무 심각하다며 부자들의 탐욕을 비난하는 시위가 한달 째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상위 1%는 미국 전체 부의 40%를 차지한다. 소득으로 보면 매년 전체 소득의 25%가 이들 1%의 몫이다. 25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상위 1%가 차지한 부는 전체의 33%, 소득은 12%였다. 해가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더니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달 17일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뉴욕에서 처음 열렸을 때만 해도 삐딱한 젊은이들의 객기 어린 집회 정도로 여겨졌다. 언론도 일반 대중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면 사그라들 줄 알았던 이들의 시위가 끈질기게 이어지며 미 전국과 세계 전역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풀뿌리 운동이 싹트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99%’는 누구일까? 상위 1%가 독점하는 경제 시스템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불특정 다수를 의미한다. 사실 99%는 과장이다. 미국민의 99%가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소득 85백분위수 집단의 가구당 연소득은 10만 달러, 95백분위수의 경우는 15만 달러 이상이다. 공원에서 노숙하며 시위에 동조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가족 친지들의 어려운 사정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공감한다는 점에서 ‘99%’의 울타리 안으로 편입된다.
시위대는 ‘99%’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기지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난다. 돈이 없어 식료품을 살지 렌트를 낼지 선택해야 한다. 보험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장시간 일하고도 봉급은 쥐꼬리이고 아무런 권리가 없다. 아니면 아예 일이 없다. … 우리는 99%이다”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건 나’라고 느끼고, 일종의 동병상련이 시위에 대한 호응으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는 99%’ 사이트에는 온갖 사연들이 올라와 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종이에 써서 찍은 사진들이 매일 올라온다. 이런 내용들이다.
“추운 북동부에 사는 실직한 엄마다. 10살짜리 딸이 샤워하고 나와 히터를 틀어달라고 했다. 어린 딸에게 나는 정말로 추운 겨울에 대비해 지금은 기름을 아껴야 한다고 설명해야 했다. 나는 99%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풀타임 일이 있다. 하지만 봉급은 5년 전보다 15%가 깎였고, 고용주는 베니핏을 다 없앴다. 지금 같은 취업시장에서는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 모든 게 비싸졌는데 수입은 줄었다. 나는 99%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2010년 5월에 하버드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석사학위를 마쳤다. 그리고는 풀타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 저임금의 임시직을 전전하고 있다. 학자금 융자액은 6만 달러나 된다. 나는 99%다”
사연들은 하나같이 절절한 ‘우리들의 이야기’인데, 특히 자주 등장하는 것은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젊은이들의 좌절감이다. 취직은 안 되고, 학자금 융자액은 수만 달러나 되어서 숨이 막힌다는 하소연들이다. 젊은이들이 시위의 주축이 된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역사의 변혁이 이뤄진 예는 많다. 지난 1월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이 좋은 예이다. 대학 나오고 취직이 안 돼 과일 노점상 하던 청년이 단속반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참지 못한 것이 그 나라의 역사를 바꿔놓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월가 ~’ 시위가 풀뿌리 운동으로 정착해 내년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99%’ 속한 우리는 이번 시위가 던지는 질문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공정한 사회인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보상 받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보장 되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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