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주 영(주필)
도심 보도에 벌러덩 누워 코고는 정장차림의 청년, 자기 아파트 문에서 불과 20여 발짝 떨어진 길바닥에 누워 옷이 오줌범벅이 된 채 곯아떨어진 중년남자, 남들이 자기 몸을 넘나드는 것도 모르고 전철 출입문 바닥에 가로누워 인사불성이 된 승객… 서울에 거주하는 한 미국인이 이런 낯 뜨거운 사진들을 자기 블로그에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원어민 영어교사인 이 미국청년은 2년여 전부터 ‘필름 끊긴 한국(Black Out Korea)’이라는 사진 블로그를 익명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서울이 인사불성 취객들의 천국이라며 미국경찰은 취객이 길거리에서 주정만 해도 가차 없이 체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체면문화가 몸에 밴 한국인들이 꼭지가 돌 때까지 마시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런 취객들을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는 일반 시민들도 기이하다고 그는 꼬집는다.
볼꼴 사나운 폭음문화가 한국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퀸즈 검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기소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인이 월등히 많다. 당국이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이지만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폭음문화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자살률, 꼬리를 감추지 않는 ‘고아수출’ 최근 더 극성을 부리는 성매매 행태까지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
지난 2009년 통계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60명꼴로 자살했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력계층인 50대 남성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한-미 무비자협정이 발효한 후 한국여성들의 원정 성매매도 급증했다. 최근 5년 사이에 벌써 뉴욕일원에서만 200여명의 한국여성이 매춘 또는 매춘 알선혐의로 체포됐다.한국의 경제는 세계 12위 규모이다. G-20에 진입했을 뿐 아니라 작년엔 G-20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88 서울 올림픽에 이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권도 따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강의 기적‘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에 걸
맞는 국민들의 품격은 여전히 수준 이하여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품격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차곡차곡 쌓여진다.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본받을만한 국민품격이 많다. 지난 9.11테러나 정전사고 때 미국인들이 보여준 차분하고 질서있는 태도가 그렇고, 일본 동북부의 쓰나미 사태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본인들이 줄을 서서 물과 음식을 침착하게 받아가는 모습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한 외국인 논평가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한국인은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민족이라고 폄하했고, 일본인은 남에게 될 수 있는 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민족이라고 추켜세웠다. 로마는 국가가 한창 융성할 때 국민들의 ‘노블리즈 오블리제’ 의식이 매우 강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간산업이나 도로건설, 교육기관 등에 사회적으로 혜택 받는 계층의 사람들이 공익
을 위해 자기의 소임을 앞장서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차 자기이익만 추구함으로써 질서가 깨졌고 결국 나라와 사회전반의 기강이 무너지면서 망하고 말았다.
한국인은 자고로 염치를 중요시했는데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은 국민의 품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 하나쯤 어떠랴” 하고 공직자와 기업인 등 지도층이 탈세, 위장전입, 군대기피 등의 불법을 자행하다 보니 너도 나도 따라하면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해졌다.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위상이 떨어지고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 나 하나의 잘못은 결국 사회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민족전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 한 사람의 행동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깊이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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