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뉴욕 월가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모여 미국 금융 시스템의 부패와 탐욕 그리 고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규탄하면서 시작된 작은 시위가 한 달째 계속되면서 그 규모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월가를 점거하라 (Occupy Wall Street), 미국의 가을 (American Autumn), 지구촌의 분노 (Global Anger), 정당성의 위기 (Crisis of Legitimacy)”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 사태는 뉴욕에서 시작되어 로스앤젤러스,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튼 등 다 른 도시와 대학가로도 번지고 있고 또 캐 나다, 호주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시위와 저항은 올 들어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도 있었고 영국, 독일, 아이슬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지에서도 있었다. 세계적인 저항의 물결 인 셈이다. ‘월가를 점거하라’고 외치는 이들의 주 장을 들어보면 다 정당한 근거와 이유가 있 는 것 같다.
미국 국민의 1%에 해당하는 사 람들이 미국 전체 자산의 1/3 이상을 소유 하고 있는 것, 두 자리 수에 근접한 높은 실업률 속에 대졸 청년실업자가 25만 명에 달하는 것,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월가 의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공적자금의 지원 으로 겨우 회생한 처지인데 엄청난 상여금 을 지급하면서 흥청망청 하고 있는 것, 최 고의 부자 워렌 버핏보다 그의 비서가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한다는 것,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많은 서민들이 집을 빼앗기고 무숙 자로 전락하는 것 등등.
이른바 ‘월스트릿 자본주의’가 난도질을 당할 만하고 그래서 이들이 그렇게 분노하 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월스트릿 자본주의는 그동안 수많 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증시폭락으로 세계 대공황이 일어났던 1920년대 말까지 거슬 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최근의 기억만으로 도 엄청나게 큰 위기와 사건들이 월가 주 변에서 계속 터졌다.
롱텀 캐피탈 헤지펀드 파산, 엔론 사태, IT버블 붕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리만브라더즈 파산, 대형금융 기관 구제금융, 파생거래 대형손실사고 … 이런 중에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심화하여 결국 1%는 배불리 먹고 99%는 굶주리는 극심한 불평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분노와 열 정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구체 적인 요구사항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현실적인 한계인 것 같다. 일부에서는 총파업을 하자고 선동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답이 아님은 물론이다. 전쟁 을 치르느라 쏟아 붓는 돈을 청년 실업에 투입하라는 주장도 설득력은 있지만 빠른 시일에 효과를 기대할 만한 현실성이 없다.
‘금융거래에 대한 세금 인상’ 또는 ‘창업 자 면세 폐지’ 등과 같이 자본주의식 돈 벌 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울분의 토로일 뿐 잘못하면 오히려 경제의 숨통을 더 조일 수도 있다. 시위대가 그들의 구호처럼 당장 월가를 점거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지? 미국이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들도) 지금의 자본주의를 경영하고 시장경제를 도모해 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당장 에 무엇을 어떻게 뜯어고칠 수 있을까?
월 가의 자본주의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지 만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뚜렷한 해결방안 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같은 현실에서 필자처럼 학교에서 경 제, 경영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특히 큰 당 혹감과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 일찍부터 자본주의에 관한 교육을 받고 시장경제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쳐 온 사람들로서 는 과연 그동안 올바른 것을 올바로 가르쳐 온 것인지 회의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윤을 창출하고 극대화하는가를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 반사회 적, 반인류적,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으니 이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진지 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제도적 개혁 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일 깨워 주고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진통이 따 를 것이다. 그 때까지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뭔가를 (아마도 지금껏 가르쳐 오던 것을) 계속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장석정/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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