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억울함 중에는 자신은 죄가 없는데도 죄를 뒤집어쓰고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좀 괜찮다. 목숨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중한 목숨까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억울함도 있다. 아마 이런 억울함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지난 9월21일 조지아주 잭슨시에 있는 주교도소 사형집행장에서 침대에 묶인 채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둔 한 흑인 남자가 있다. 나이 43세. 트로이 데이비스. 그는 죽기 전 유족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나는 결백하다. 나는 그 때 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그는 1989년 경찰관을 권총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 중 목격자들 대부분이 그들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2년 동안의 복역 중 4차례나 형 집행이 정지됐다. 사형이 선고 된 후 그의 결백을 믿는 많은 지지자들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교황 베네딕토 16세까지 그의 구명운동에 참여했다. 마지막 사형집행일. 그는 형 집행정지신청을 미 대법원에 내자 집행이 잠시 중지됐다.
교도소 주변에서 사형반대 시위를 벌이던 수백명의 사람들은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환호를 질렀다. 대법원은 2시간의 논의 끝에 사형집행정지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그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세계에선 많은 여론이 들끓었다. 프랑스 외무부는 “그렇게 많은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89년 7월28일 뉴욕 업스테이트의 한 기도원. 사랑하는 딸의 우울증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딸과 함께 기도원을 찾은 한인이 있었다. 이한탁씨. 그런데 딸이 머무르던 기도원 막사에서 불이 났고 딸이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간주하고 체포해 재판을 통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선고를 받게 했다.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음을 화재전문가들이 검증을 통해 밝혔다. 김대중 전 한국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구명운동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이 70이 넘은 현재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다. 십 수 년 전 화재가 발생한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죽일 수 있느냐?”라는 혼자만의 질문이었다. 지난달 24일 메사추세츠주 치코피에 사는 한인 김동수(44)씨. 콩가몬드 호수에서 딸(8)과 함께 보트를 타다 딸이 물에 빠졌다. 딸을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 든 아버지는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익사했다.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보트의 사람들에 의해 딸은 살아났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던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한탁씨의 경우.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다. 누전으로 인해 사망했다면 상당한 보험금을 지급해야만 하는 보험회사의 공격적인 로비. 처음부터 검찰의 기소와 재판에 대해 미온적으로 처신한 교회의 처사 등등. 특히 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할 때 이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1974년 한국에서 일어난 제2차 인혁당사건. 중앙정보부는 국가전복을 획책했다는 명목으로 253명을 구속했다. 관련자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1975년 4월9일, 선고된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이들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사기 쳐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사기에 말려들어가서도 안 된다. 혼탁한 세상이다.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자신을 해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남을 도와가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다. 토리 데이비스. 그의 결백은 그와 하늘만이 알 것이다. 70이 넘은 지금에도 감옥에서 가족과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이한탁씨. 그의 결백도 그와 하늘만은 알 것이다. 제2차 인혁당사건의 사형수 8명.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그들의 혼령들이 하늘에서나마 웃음을 지을 것
이다. “나는 결백하다”란 토리 데이비스의 유언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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