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인기 상종가였던 개그맨 강호동씨가 갑자기 2주전 잠정은퇴를 발표했다. 세금포탈이 문제였다. 그의 극단적 결정을 놓고 한쪽에서는 탈세를 밥 먹듯 하는 세상에 강호동만 족치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동정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당연히 내야 될 세금을 안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맞섰다.강호동이 유독 비난받은 이유는 그의 탈세액이 많아서가 아니다. 인기를 한몸에 받는 국민
MC로서 ‘노블리즈 오블리제’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부, 권력, 명성 따위가 있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강호동 같은 개인 탈세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일부 재벌그룹들의 조직적 세금포탈의 규모는 훨씬 크고, 돈세탁, 자녀승계 운영 등 노블리즈 오블리제와는 아주 정반대다.
세계적 부호 워렌 버핏이 최근 부자들의 증세문제를 거론해 관심을 모았다. 작년엔 세계 최고갑부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워싱턴주에서 부자세 도입문제를 제안했다가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 강호동 탈세가 문제되고, 미국에서 부자들의 증세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가진 자들의 노블리즈 오블리제 정신이 사회에 너무나 중요하다는 인식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그러나 노블리즈 오블리제가 가진 자들만의 문제인가? 고위공직자들의 청렴과 도덕성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판과 사회가 연일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사는 지도층들의 기본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상황은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피곤하다. 그렇지만 한국내 상황은 그곳 사람들이 잘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왈가불가 나설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해외주재 외교관들은 우리의 생활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한인사회를 위해서 온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들은 한미간의 관계증진과 한인들의 권익보호, 2세교육 지원,
본국 내 재산권 등 민원업무 처리, 한인사회와의 유대강화 등을 위한 촉매제, 또는 교량역할을 하기 위해 나와 있는 국가기관이다.
그 같은 본래취지를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업무방향이나 기본자세에서 한인사회를 은연중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영사관이 미국의 공휴일과 한국의 공휴일 양쪽 모두 휴무해 한인들이 급한 민원사항이 있을 때 낭패를 겪었었다. 그리고 관료적이라는 이유로 어느 곳에서나 영사관의 문턱이 높다는 것이 한인들의 가장 흔한 불만이었다. 이런 관행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좀 개선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영사관의 업무와 공관원들의 생활태도 등이 매우 비도덕적이라는 지적이 속속 터져 나오고 있다. 한인들이 국적회복 및 이탈신고 등 영사관 민원업무 수수료를 최고 40%나 더 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외공관 공용차량 10대중 3대가 ‘외국차’이고, 재외공관원 자녀학비 지원금도 93%가 원래규정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일부 외교관들의 성추문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러고도 이들이 국민의 혈세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인지 의아하다.
지난 26일 실시된 현지총영사관 등 공기업에 대한 한국국회의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미주감사반의 국정감사에서도 재외선거 실시 경우 한인사회 화합과 단결에 저해될 소지가 있는데 대한 무대책이 지적됐으며 문화원의 방문객 감소 및 교육원의 한국어 정규과목 채택 저조실적에 관해 집중 질타를 받았다. 현지주재 한국의 공관원들이 진정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한국이 급속도로 잘 살게 되고, 상대적으로 미국경제가 장기간 침체되면서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은 본국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미주 한인들을 ‘재미 똥포’라 부르며 ‘남의 속옷이나 빨래하는 거지’로 폄하한다고 들었다. 행여 만에 하나라도 현지 공관원들에게서까지 한인들이 그런 인상을 받는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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