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비틀어보기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퀴즈 하나. 목사와 경찰관과 기자가 식당에 모여 식사를 했다. 밥값은 누가 냈을까. 목사? 경찰관? 기자? 모두 틀렸다. 정답은 ‘식당주인’이다. 대접 받는 데만 너무 익숙해 있는 직업군을 꼬집고 있는 유머다. 사회 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다잡고 기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할 소임을 지닌 인사들이 본분을 잊는 처신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이런 유머가 나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금품수수 의혹과 논란은 한국사회 지도층의 청렴의식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 기업인이 수년간에 걸쳐 정권 실세들에게 수억원대의 금품을 지속적으로 건넸다는 것이 스캔들의 핵심이다.
자신의 돈을 받은 정권 실세들이 뒷배가 돼줄 것을 기대했던 이 기업인은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극도의 배신감을 이기지 못해 스폰서 내역을 폭로한 것으로 보인다. 금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인사들은 금품수수 자체를 부인하거나 대가성이 전혀 없는 호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직 관리들의 전형적인 대응법이다.
맹자는 제나라에서 주는 돈 2,000냥은 안 받았지만 송나라에서 건넨 돈 1,400냥은 받았다. 이것을 본 한 제자가 무슨 이유에서 그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송나라 것은 전별금이라 받았다. 그러나 제나라 것은 받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없었다. 그런 돈을 받으면 뇌물이 된다.” 맹자는 정치가나 권력자가 아닌 학자였다. 상대에게 반대급부로 줄 것이 없으니 받아도 큰 문제가 없을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돈은 깨끗하지 못하다며 받기를 거부했다. 맹자는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금품을 뇌물로 규정했지만 사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주고받을 때는 선물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물로 드러나거나 변질되곤 하기 때문이다.
받는 이와 주는 이가 갑과 을의 관계에 있고 을이 갑에게 건네는 선물이라면 이것은 뇌물로 봐도 무방하다. 기업인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년 소녀 가장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한다면 이것은 선물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는 공직자에게 건네는 금품은 순수한 선물이 될 수 없다. 당장 어떤 구체적인 형태의 거래가 없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번 스캔들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나중을 대비한 보험성 뇌물은 순수한 호의로 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의 칼자루와 펜을 쥔 손이 얼마나 깨끗한가는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 주는 대표적인 지수라 봐도 무방하다. 미국이 선진국가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윤리의식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선물과 향응을 받는데 엄격한 규정이 적용된다. 연방의원은 연 100달러 총액 안에서 50달러 미만의 선물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자협회인 시그마델타카이는 1973년 “선물과 특혜, 무료여행, 부업, 공직 취임 등은 언론인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는 내용의 윤리강령을 만들었으며 각 언론사는 이에 따라 자체적으로 강력한 규정들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간혹 일탈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치인들과 언론의 독직이 드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국도 선진사회를 표방하면서 미국 것에 준하는 엄격한 윤리 강령들을 만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의식이 규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권력이 다른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재벌 총수들이 제식훈련 하듯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다. 이런 후진적 잔재가 남아 있는 한 선물을 가장한 금품제공과 보험용 뇌물은 뿌리 뽑기 힘들다.
평생을 선물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에 몰두한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기브 앤 테이크’로 파악했다. 그래서 그는 오고 가는 선물 속에도 의무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하물며 뇌물의 경우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몽테뉴는 “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날렸다. 뇌물을 받고도 대가 없이 받은 선물이라고 강변하는 인간들,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뼛속 깊숙이 새겨야 할 금언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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