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쯤 전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사적인 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77세이던 동갑의 남편이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며 그가 기뻐하는 것이 뉴스가 되었었다.
스탠포드 대학동창으로 만나 50여년 같이 산 그의 남편 존 오코너는 말기 알츠하이머 환자로 요양시설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 아주 다정한 여성 환자가 있어요. 이따금 손을 잡아주고 동무가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남편에게) 좋은 일이지요. 나는 정말 기뻐요”라고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코너 대법관은 알츠하이머 남편 때문에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 변호사였
던 그의 남편은 60도 안된 나이에 병 진단을 받았고, 그런 남편에게 오코너는 헌신적이었다. 2006년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자 남편 간호를 위해 종신직인 대법관직을 포기했을 정도였다.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남편, 병마에 정신도 영혼도 빼앗겨 죽은 혼백 같던 남편이 ‘어떤 여자’ 때문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면 어떤 기분일까. 오코너는 ‘남편이 행복하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했고, 아내가 남편의 ‘늦바람’을 반기는 이 이상한 현상을 미디어들은 화제로 삼았다. 2007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그의 남편은 그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미 전국에서 현재 500만 명 정도인 환자 수는 2050년이 되면 1,35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7,900만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결과이다.
올해부터 베이비부머들은 앞으로 19년간 하루 1만 여명, 1년에 400만 명씩 65세라는 나이 선을 넘어선다.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은 65세 이후 매 5년마다 배로 높아지고 85세가 되면 두 명에 한 명꼴로 환자가 된다. 그만큼 알츠하이머 환자를 배우자로 두는 사람도 늘어난다는 말이 된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부부문제가 머지않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주 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사건이 있었다.
TV 부흥사 팻 로벗슨 목사가 자신의 프로그램 ‘700 클럽’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 알츠하이머 아내를 둔 친구의 문제를 상의했다. “그의 아내는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남편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친구는 지금 다른 여성을 만나고 있는 데 내가 어떤 충고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로벗슨 목사는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친구에게) 이혼하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라”는 조언을 했다. 단 그 아내가 제대로 간호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비난이 빗발치듯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병든 배우자는 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라는 결혼서약은 어떻게 되는 건가 … 보수 기독교계에서 특히 반발이 심했다.
로벗슨 목사는 말을 함부로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지난해 아이티 지진 때만 해도 그 국민이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저주 받은 것’이라고 말해 세계적 빈축을 샀다. 이번 알츠하이머 배우자 케이스에서도 함부로 말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전문가 등 병을 가까이서 접한 사람들은 그의 이번 조언을 무조건 비난만 하지는 않는다. 알츠하이머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떤 의미에서 환자보다 그 배우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삶은 관계로 의미를 갖고, 관계는 함께 한 시간과 경험, 공유한 기억을 토대로 하는데, 알츠하이머는 그 모두를 백지처럼 지워버린다. 도무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환자 앞에서 배우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독과 절망에 빠진다. 로벗슨 목사의 발언은 그런 배우자들에게서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배려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단순한 기억상실증이 아니다. 뇌기능을 완전히 파괴해서 기억력은 물론 그 사람의 성격, 인격, 인지능력, 행동, 신체기능 등을 모두 무참하게 부셔버린다. 그래서 배우자들은 환자 앞에서 남편·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빠지곤 한다. 자신이 알던, 자신을 사랑하던 남편·아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코너의 남편처럼 알츠하이머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떤 근원적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따뜻함에 대한 갈구이다. 비슷한 욕구는 환자의 배우자들에도 깊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따뜻한 체온으로 위로받고 싶은 욕구. 알츠하이머 환자 부부문제는 21세기 우리 앞에 놓인 숙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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