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는 항상 분배의 문제가 따른다.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복지논쟁에서 보듯 분배를 둘러싼 관점은 곧 정치적인 이념이며 사회적 갈등의 가장 빈번한 원인이 된다. 분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내느냐는 곧 정치의 수준과 사회의 성숙도를 말해 준다.
정의론과 관련해 빠지지 않는 이름인 존 롤스는 20세기 최고의 윤리학자이다. 롤스가 주장하는 정의는 분배에 있어서 “불합리한 불평등이 없는 사회”였다. 롤스는 사회의 불평등을 불가피한 어떤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평등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설 경우에는 도덕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 롤스의 생각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터무니없는 차등 대우를 받지 않는 사회를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본 것이다.
아무리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지만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종업원들의 평균 연봉보다 500배나 더 가지고 가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를 정의롭다고 보기는 힘들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지배하면서부터 능력이 뛰어난(혹은 뛰어나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받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보상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져 왔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요롭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리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빗대 이런 현상을 ‘마태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태효과가 확산되면서 고통 받는 계층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있는 것까지 빼앗기는’ 없는 자들이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빈곤층 보고서에는 이 같은 승자독식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노정돼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GDP가 크게 상승했을 때도 대부분의 실과는 승자들의 몫이었다. 경기 침체로 그런 불합리한 불평등이 가속화 됐을 뿐이다.
승자독식에서 비롯되고 있는 빈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열심히 일하는 데도 기본적인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 버거운 미국인들이 급속히 늘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들이다. 1980년대 보수주의자들은 빈곤=게으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빈곤을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만드는데 상당부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주변을 한 번만 찬찬히 돌아봐도 곧바로 확인된다. 정말 뼈 빠지게 일하는 데도 빈곤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수두룩한가. 이들을 빈곤으로 내몬 것은 경기의 부침이나 게으름이 아니다.
우리가 숱하게 들어 온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 속에는 빈곤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 운명론적 체념이 가득하다. 그러나 국민들의 빈곤 해소를 위해 ‘나랏님’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많다. 최소한의 생계는 꾸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회 안전망은 기본이고 불합리한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제도적인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빈곤 구제가 그저 연민과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빈곤은 궁극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빈곤은 사회에 독이 된다. 어린 시절 가난은 아이들의 뇌를 상하게 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다 분비시켜 건강한 발달을 저해한다는 것이 지난 2008년 미국 고등과학협회가 다양한 연구들을 취합해 내린 결론이다.
빈곤이 아동들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환경적 요소들보다 해로우며 장기적으로 사회에 심각한 불안요소가 된다. 많은 범죄가 어디서부터 싹이 자라는지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빈곤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빈곤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사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불안과 갈등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전체의 몫이 된다. 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육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병 또한 치료보다는 예방이 더 현명하고 비용 효율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당장 빈곤문제가 완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 미국사회를 왜곡시켜 온 승자독식 구조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는 의미가 있다. 보수진영은 “계급전쟁을 벌이자는 것이냐”며 날을 세우고 있지만 ‘부자 퍼주기’로 계급을 심화시킨 당사자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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