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이민 오면서 서울에서 막대한 운임을 들여 자개장롱에서부터 보료, 안침까지를 가져온 가정도 있으나 그런 것들이 이곳 생활에서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운가는 살아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 고추장, 된장, 참기름에서부터 모두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는 이민 올 때 무슨 고집인지 자개장서부터 고추장, 된장류는 큰 석유깡통에 납땜질까지 해서 선편으로 많은 운임을 들여 가져왔다.>
1970년대 한인이민의 한 단면이다. 당시 본보 이종성 주필의 칼럼에 나오는 구절이다. 집안의 규모 보여주는 자개농 챙기고, 안 먹으면 못 살 것 같아 고추장 된장 챙기는 그 불편과 불안을 감수하며 미국으로, 미국으로 온 이유는 하나,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엠마 라자러스의 시처럼 지친 자들, 가난한 자들, 숨 한번 자유롭게 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은 신천지로 몰려들었고, 그 모두를 미국은 넉넉하게 품어 안았다. 그 품에서,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결실이 돌아오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넘어가는 만큼 풍요가 보장되는 나라, 미국은 희망을 창조하는 나라였다.
미국에서 희망의 토양이 메말라가고 있다. 금주 초 인구 센서스국이 발표한 ‘소득과 빈곤’ 보고서를 보면 가난하고 지친 자들이 들어설 입지는 미국사회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센서스 보고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소득은 줄고 빈곤은 늘었다’는 암울한 그림이다. 2010년 미국의 빈곤층 인구는 4,620만 명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최대수치이다. 인구비율로는 15.1%로 1993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종잡아 인구 6명 중 한명이 빈곤층이라는 말이다. 4인 가족 기준 연소득이 2만2,314달러 미만이면 빈곤층에 속한다.
경제가 안돌아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어 소득이 없으니 국민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구당 중간소득은 물론 줄어들었다. 가구당 중간소득이 가장 높았던 1999년(5만3,252달러)과 비교해 2010년 중간소득은 7% 이상 줄었다.
연금이나 투자수익으로 소득이 오히려 늘어난 65세 이상 노년층을 제외하면 가구당 중간소득의 하락폭은 더 크다. 65세 미만의 가구당 소득은 가장 높았던 2000년과 비교해 무려 10%가 줄었다. 손 놓고 놀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생활수준이 나아져야 정상인데 그 반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우리는 거꾸로 산건가?”하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2000년대는 미국 중산층의 ‘잃어버린 10년’이다.
둘러보면 저마다 어렵다. 자영업자들은 매상이 떨어져 어렵고, 직장인들은 봉급이 깎여 어렵고, 1,400만 실직자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실직자들의 평균 실직기간은 40주가 넘는다. 노동시장이라는 성벽의 바깥으로 한번 내몰리면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불경기라는 우기가 닥치면 비를 피할 수는 없다. 날이 갤 때까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같은 우기(불경기)인데도 어느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어느 지역에는 날이 맑다 못해 무지개가 뜨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1999년 이후의 소득하락폭을 보면 소득별 최하위 10% 집단의 경우 12.1%가 줄었다. 반면 상위 10%의 소득은 불과 1.5% 하락했고, 최상위 1% 집단의 소득은 오히려 증가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형편은 점점 나빠지고 부유층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금처럼 심각한 적이 없다.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하면 그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져서 결국은 사회 전체로 돈이 돈다는 공화당의 주장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런 이론이 먹혀들기에는 기본적 소득 격차가 너무 크다.
미국의 대표적 유제품 업체로 딘 푸즈라는 기업이 있다. 1970년대 이 회사 CEO의 연봉은 오늘의 달러가치로 100만 달러였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캐딜락을 제공했다. 30여년이 지난 현재 CEO는 그 10배의 연봉을 받으며 1,000만 달러짜리 회사 제트기로 움직인다. 회사 직원들의 임금도 같은 비율로 올라야 맞겠지만 그 반대다. 시간당 23달러인 이들의 현재 임금은 실질 가치에 있어서 30여년 전보다 오히려 9%가 하락했다.
고소득층의 소득은 로켓처럼 치솟고 저소득층의 소득은 바닥을 기는 것이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당연한 현상으로 보는 것, 불평등한 만큼 경쟁이 치열해져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환영하는 것, 그래서 탐욕은 당당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너무 깊다. 미국이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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