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노년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사회적인 역할이 축소되는 이 시기는 두려움으로 다가서기도 하고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고픈, 회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속살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곤 한다.
하지만 노인들은 의외로 행복하다. 워싱턴 DC 지역의 한인 노인 250명을 대상으로 지난 3개월간 실시된 조사에서도 이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응답자 가운데 73%는 “현재 행복하다”고 밝혔다. 또 “지금 이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81%가 그렇다고 밝혀 이승에서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장수와 건강, 신앙생활, 가족 등 다양했다. 그러나 재산과 지위를 꼽은 사람은 7%와 3%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 수준만 넘어서면 돈은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응답자의 74%가 이런저런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4명에 3명꼴로 행복감을 나타낸 것은 행복에는 건강과 경제력 같은 외형적 조건을 뛰어 넘는 어떤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한인 노인들 조사결과는 기존의 행복 연구들과 일치한다. 인간의 행복감은 인생의 시기에 따라 U자형을 그린다는 것이 지난 십수 년 간 활발히 진행돼 온 수많은 행복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거칠 것 없고 희망에 부푼 청년 시절 최고점에 달한 행복감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삶에 찌들어 가면서 서서히 낮아져 중년기에 저점에 도달한다. 아이들과 부모 양쪽으로부터 치여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바로 그 시기다.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46세가 행복감이 가장 낮아지는 때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50을 지나면서 행복감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해 노년기에 들어서면 젊은 시절과 비슷한 수준의 행복감에 다시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하고 젊은이들은 의아해 할지 모른다. 하지만 노인들은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나 노년에 찾아오는 이런 행복감은 무궁무진해 보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던져주는 젊은 시절의 행복감과는 결이 다르다. 세월과 기회를 많이 쥐고 있다는 데서 오는 포만감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데서 오는 자족과 감사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은 흔히 젊은 시절 잊고 지냈던 집중성과 강렬성을 되살려 주며 그것은 노년의 또 다른 선물이 된다. 한 인생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들려준다. 그는 시간의 한계를 뚜렷이 인식하게 되면서 삶을 단순화 시켰으며 관계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한층 더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이것이 현명한 인생 관리다.
그러나 유한성에 대한 각성만으로 노년의 행복감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여기에 더해 풍상을 겪고 단련되면서 얻는 지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의 두뇌를 스캔해 보면 편도체가 긍정적 자극과 부정적 자극 모두에 반응하지만 연로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긍정적 자극에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침내 에고가 이드를 길들이는 법을 배웠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지혜이다. 야망이 소멸한 자리에는 관조와 받아들임이 들어선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한국말에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는 약 430개에 달한다. 수많은 단어들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꼽는 표현은 ‘홀가분하다’라는 것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의외로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이 보태진 상태가 아닌,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린다”고 설명한다.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 등 사회적 책무를 벗어 던지고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그 상황이 선사해 주는 편안한 감정이 바로 홀가분함일 것이다. 노년의 행복은 한마디로 이런 홀가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이런 행복의 비법을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경남 통영에 있는 선생의 묘소에 가면 이런 시구가 새겨져 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에게 편안함을 안겨준 감정과 지혜가 노년의 전유물만 되어야 할 까닭은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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