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사랑도 지나치면 학대가 될까?” - 2년쯤 전 이탈리아에서 제기되었던 이슈이다.
우리는 한국 엄마들의 자식사랑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이탈리아 엄마들이 극성 모성애의 챔피언으로 꼽힌다. 엄마들이 어찌나 자식 뒷바라지에 열성인지 이탈리아에서는 30대 심하게는 40대에도 엄마와 같이 사는 아들들이 많다고 한다(딸들은 훨씬 독립적이다). 30~ 34세 남성들 중 무려 37%가 엄마와 같이 산다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엄마 치마폭에 푹 싸인 아들들, 즉 마마보이를 이탈리아에서는 맘모네라고 부른다.
자녀 과보호가 일상인 이탈리아에서도 정도가 너무 지나쳐 사회적 논란이 된 케이스가 있었다. 2년 전 한 소년의 엄마와 조부모는 아이 사랑이 과도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시 12살인 이 소년을 어른 셋이 어찌나 싸고도는지 그 보호의 벽이 너무 높아 아이가 정상적인 발육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혹시라도 다치면 어쩌나 하는 어른들의 걱정에 아이는 밖에 나가 아이들과 놀지도 못하고, 축구 같은 운동은 상상도 못하며 교회에도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말도 꺼내기도 전에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척척 대령해주니 아이는 손 하나 까딱 할 필요 없이 자랐다. 결과적으로 소년은 12살이 되도록 달리기도 할 줄 모르는 장애아 아닌 장애아가 되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케이스는 드물지만 자녀 과보호는 이제 시대적 현상이 되고 있다. 자녀 주위를 맴돌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부모, 소위 헬리콥터 부모가 늘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는 2대 독자, 3대 독자 등 외아들이 과보호의 대상이었다. 집안의 손을 염려하는 어른들 때문에 이런 아들들은 물가에도 못가고 등산도 가지 못했다.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인 지금, 아이들은 거의 외아들 아니면 외동딸이다. 과거 너덧 명에게 분산되던 부모의 관심이 한둘에 집중되니 과도한 관심은 산술적으로 필연이다. 과도한 관심이 과도한 걱정을 낳고 걱정이 과보호를 초래하곤 한다.
두 아들을 키우는 30대의 한 주부는 ‘사회 환경’을 헬리콥터 부모가 늘어나는 한 원인으로 꼽았다. 학교 내 집단 따돌림, 어린이 대상 성범죄, 인터넷의 유해한 내용 등 아이들 키우기에 요즘 세상은 너무도 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걸어서 집에 와서 혼자 집에 있어도 별일이 없었지요. 지금은 불안해서 아이들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요.”
사회적 불안 못지않게 부모들을 ‘헬리콥터’로 만드는 것은 경제적 불안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중산층으로 살던 좋은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을 뚫고 자녀가 안정된 미래를 보장 받으려면 결국은 교육, 명문대학 입학이라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이제 미국에서도 퍼지고 있다.
한인 2세들을 포함, 주로 고학력 전문직 부모들 중에는 유치원부터 ‘명문, 명문’ 따지며 아이의 학교공부, 친구관계, 특별활동 등을 까다롭게 챙기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가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거나 잘못 디디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독하겠다는 태세이다.
이렇게 넘치는 보호 속에 자란 아이들은 건강할까? 최근 닐 몽고메리라는 심리학자가 대학 신입생 3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수적으로 ‘헬리콥터’ 자녀들은 전체 대상자의 10% 정도이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독립심과 자신감, 성숙도가 떨어진다는 것. 소위 진취적 기상 같은 것은 이들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찬바람 한번 쐬지 않고 온실에서만 자란 결과이다.
90년대부터 미국의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높은 미끄럼대와 시소가 사라졌다. 아이들이 떨어져서 다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이 다치는 사고는 줄었다. 하지만 그 대신 아이들의 정서적 발육이 저해되었다는 비판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아이들은 높은 데 올라가서 떨어져 보기도 해야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법을 배우는 데 그런 기회가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과보호는 아이가 실수하고 실패할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새가 날다가 떨어져 다칠까봐 아예 날개를 잘라버리는 것 같은 일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자녀의 올 한해 학교생활이 성공적이 되도록 돕기 위해 부모들은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딱 알맞게 관심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헬리콥터’가 너무 요란스러우면 새가 날갯짓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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