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성경구절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끌고 오자 예수가 내린 판결이다. 기세등등하던 군중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자리를 떴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한국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부결되었다. 표결 전 발언자로 나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위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강 의원을 변호했고, 필시 양심에 가책을 느낀 국회의원들은 하나하나 반대표를 던졌다. 언론과 여성단체들, 아나운서 연합회는 국회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 분개했고, 온 국민은 덕분에 성경 구절 하나를 단체로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발언은 1년도 더 넘은 사건이다. 지난해 7월 연세대 토론팀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그는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 데 그래도 아나운서 하겠느냐” “남자는 다 똑같다.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는 류의 낯 뜨거운 발언을 했다.
‘국회의원 성희롱’에 분노한 여론과 달리 국회는 미온적이었다. 제명안을 미루고 미루다 지금에야 본회의에 상정한 후 부결로 끝냈다. 여론 눈치 보느라 징계하는 척은 하면서도 “이만한 일로 무슨 징계?”라는 정서가 강했던 탓으로 짐작된다. 그런 정서는 김형오 의원의 본회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강 의원이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소신을 지키며 의정활동을 해온 지성과 교양과 예의를 갖춘 정의로운 후배”였다며 일생일대의 실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은 그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한가. 나는 던질 수 없다”며 제명 반대를 호소했다.
41살 강용석 의원은 경기고-서울법대-하버드 법대 등 초일류 학벌을 갖춘 대단한 인재로 주목받던 인물이다. 그에 대한 김 의원의 평가는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주제가 여성과 관련될 때, 그는 원색적이 되곤 했다. “군살하나 없는 날씬한 몸매 … 박근혜는 섹시하다” “(나경원은) 얼굴은 예쁘지만 키가 작아 볼품없다” 등의 발언을 공석에서 거침없이 했다.
평소 반듯하고 예의바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왜 ‘여성’에 대해서는 입만 열면 성희롱 일까? 일종의 학습효과가 아닐까 짐작된다. 남성중심 문화에서 그런 류의 발언은 좌중을 즐겁게 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앞에서 여성들은 오랜 세월 입 다물고 참아야 했다. 여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는 시대적 변화를 그는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성에 있어서 남성은 ‘주체’이고 여성은 ‘객체’로 이분되는 불평등의 역사는 깊다. 남성은 욕망의 주체로 존중받고, 여성은 그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될 뿐이었다. 앞의 성경구절에서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다. ‘간음’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있는 데 왜 남자는 없을까?
성과 관련, 남성에게는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은 ‘여자의 잘못’으로 보는 시각이 배경이다.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해묵은 시각은 21세기에도 남아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는 특이한 여권운동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거리여자 행진(Slut Walk)’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이 거리의 매춘부 같은 차림으로 시위를 하는 행사이다. 성범죄에 대해 “여자가 그런 옷차림을 했으니… ” “여자가 행실이 그러면 당연한 일” 등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시작은 캐나다 여성들이었다. 지난 1월 토론토의 요크 법대에서 열린 성범죄 피해예방 포럼에서 토론토 경찰국의 한 경관이 한 발언이 불씨가 되었다.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헤픈 여자 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는 말, 여성이 잘못해서 범죄피해를 자초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더해 캐나다 여성들의 분노에 불길을 당기는 판결이 있었다. 2월에 열린 한 재판에서 판사가 성폭행 피고에 대해 징역형 없는 벌금형만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옷차림이 선정적이어서 피고가 ‘오해’를 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캐나다 여성들은 보란 듯이 선정적 옷차림으로 시위를 벌였고, 시위는 미국, 유럽, 호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열리면서 계속 확산되고 있다.
남성은 ‘주체’ 여성은 ‘객체’인 성적구도가 남녀평등의 마지막 장벽일까? 이제 그 장벽도 허물어질 때가 되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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