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뉴욕에 이민 와 30년을 살도록 지진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LA에서 이따금 지진이 발생한다고 들었지만 거긴 3,000마일 떨어진 서부이다. 미국 땅 덩어리가 워낙 큰 탓에 지진은 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진이 LA만이 아니라 뉴욕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지난 24일 버지니아에서 발생한 지진이 뉴욕까지 흔들어 뉴욕도 이제는 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다행히 뉴요커들은 이번 지진으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현기증 정도를 느꼈을 뿐인 강도 5.9의 지진에 모두들 혼비백산했다. 만약, 이번 지진이 지난 1994년 1월의 LA 지진(강도 6.7)이나 사상최악의 쓰나미를 유발한 지난 3월의 일본 동부지진(강도 9.0) 만큼 강력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주 신문, TV 등 미디어는 뉴욕이 당장 뒤집히기라도 하듯 시끌벅적 떠들었다. 뉴욕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물가가 비싸고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러나 어느 도시보다도 응집력이 왕성한 삶의 용광로이며 꿈과 기회, 도전의 도시요, 금융과 문화의 메카이다. 그에 더해 지진대와 토네이도의 진로에서 비켜 있기 때문에 다른 대도시들이 툭하면 겪는 끔찍한 자연재해를 면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지진만이 아니라 엎친데 겹친 격으로 지난 주말 허리케인까지 할퀴고 지나갔다.
다행히 예상처럼 대재앙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재난이 더 큰 규모로 닥칠까 두렵다. 태풍, 토네이도, 홍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이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덮쳐서는 사람, 자동차, 건물, 아름드리나무 등을 모두 날려버리고, 부숴버리고, 집어삼킨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기불황의 고난은 이런 자연
재해의 피해에 비하면 사실 새 발의 피다. 뉴욕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자연재해를 보면 우리의 앞날이 너무나 불확실하다. 앞날이 불확실해질수록 종말론이 고개를 들고 사이비 종교가 득세한다.
2012년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내용의 영화 ‘2012’가 2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었다. 금년 초에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라디오 방송이 “2011년 5월21일 세상의 종말과 휴거(携擧·그리스도의 재림 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하늘로 올라감)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가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날짜계산이 틀렸던 모양이라며 발뺌을 했다.
이런 종말론에 속아 미래를 비관하고 자살하거나 재산을 사이비 종교기관에 헌납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집단혼음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종말론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그날그날 하루의 삶에 충실한다. 지난 번 대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은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구호본부 앞에 줄을 서서 그날 먹을 음식과 물을 받아갔다.
누군가가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인 ‘오늘’을 영어로 프레즌트(present·선물)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뒤집을 수 없고 내일은 어차피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늘을 선물처럼 귀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참으로 내일에 많은 기대를 걸어놓고 산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곤 한다. 내일에 희망을 거는 것은 좋지만 내일을 믿는 것은 허망하다. 우리가 가진 것은 언제나 오늘뿐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소망했던 내일이고 내일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오늘로 우리 앞에 선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오늘과 내일 모두를 망치게 된다.
오늘 하지 않는 사람은 내일도 하지 못한다. 내일에 가서는 다시 내일을 간절히 찾으며 미룰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을 믿지 말고 또 기다리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또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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