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국세청(The IRS)이라는 단어를 모두 붙여 쓰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그들의 것(Theirs)’이 되지요.” - 세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조크 중의 하나이다.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세금으로 나가는 돈 아까운 건 대개 비슷해서 ‘세금’ 하면 거부감부터 앞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사람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세금과 죽음”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세금은 비도 안 오는데 잘도 자란다”는 유태인 속담에 긍정의 미소를 짓는다.
지난 한주 ‘세금’ 논쟁이 뜨거웠다. 미국에서 시작돼 한국에서까지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그 불씨를 던진 사람은 워렌 버핏이었다. ‘투자의 달인’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은 지난 14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지난해 내가 낸 연방세금은 693만8,744달러였다. 과세소득의 17.4%에 불과하다. 우리 사무실 직원 중 내가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받았다. 정부는 왜 이렇게 부자들을 감싸고도는가. 메가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메가 부자들은 전혀 고통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며 부자가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이라도 되는 듯 과잉보호하는 연방의원들 덕분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가 내놓은 제안은 납세자의 99.7%에 달하는 하위·중간 소득계층의 세율은 손대지 말고 100만 달러 이상 소득에 대해서 세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찬반 여론이 시끄러웠다. ‘부자 감세’ 지키기 십자군을 자처하는 공화당 의원들, 백만장자들이 몰려있는 월스트릿은 ‘그게 아니다’ ‘위선이다’ 목소리를 높였고, 중산층 이하 일반 대중은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버핏이 말한 내용에서 ‘부자 증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사실은 근 700만 달러에 달하는 그의 세금액수이다. 700만 달러는 연소득 7만 달러로 100년 동안 벌어야 하는 액수. 국민 대부분은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그는 1년 세금으로 내면서, 소득에 비해 세금이 너무 적다는 말을 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득 격차가 이렇게 큰 것,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가 미국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이다.
지난해 나온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최상위 소득그룹 20%가 소유한 부는 미국 전체 부의 85%이다. 반면 최하위 40%가 가진 부는 거의 0%. 자산이 하나도 없거나 마이너스인 사람들이 많다. 대기업 CEO들의 연봉은 같은 회사 말단 근로자의 연봉의 수백 배가 되는 것이 보통이니 빈부격차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무능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공정하지만 그 차이가 수백 배라면 그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다. 버핏의 ‘부자 증세’ 주장은 세제를 통해 부를 재분배해서 부의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하자는 의견으로 의미가 있다.
지난 주말에도 우연히 ‘세금’이 화제가 되었다. 어느 댁 모임에 갔는데 덴마크 태생인 그 댁 사위가 와 있었다. 복지국가의 전형, 덴마크는 세금이 많게는 60%에 달한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비슷한데 그 나라 사람들이라고 세금 내기를 좋아할까? 궁금해서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덜 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치인이 ‘세금 인하’를 말했다가는 100% 선거에서 떨어집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4월9일이 세금해방의 날이다. 1월1일부터 그날까지 번 액수는 세금으로 나가고 그 이후 수입이 자기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덴마크에서는 6월17일이 그 날이다. 연중 절반은 세금 내느라 일하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덴마크 국민들은 행복도 조사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세금 인하’라는 말에 펄쩍 뛴다니 신기할 뿐이다.
그 국민의 행복의 근거는 심신이 두루 편안한 삶.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조건을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해주니 삶에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뿌리 깊은 신뢰감. 국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투명하게 복지를 위해 쓰인다는 깊은 신뢰를 정부에 갖고 있다고 한다. 인구 550만의 작은 나라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세금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세상의 한정된 파이에서 내가 너무 많이 차지했다면 다른 누군가가 자기 몫을 잃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세금은 그런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벌충할 제도적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