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 봐서 잘 아는데”라는 표현을 거의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시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장사를 해봐서 잘 아는데”라고 말한다. 수재민을 위로 방문한 자리에서 “수재피해 경험이 있어 잘 아는데 기왕 이렇게 된 것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해병부대를 방문해서는 “내가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라봐서 잘 아는데”라고 말했다. ‘해 봐서’ 앞에 들어간 대통령의 인생경험은 노점상에서부터 철거민, 비정규직, 환경미화원, 아이스케키 장사, 대기업 회장, 그리고 배를 만든 일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국민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한 포털에서 대통령의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어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자기과시의 표현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절반에 달했다.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4분의1 정도였다.
이런 언어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부터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생겨난 오랜 습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 지도자가 다양한 경험을 해 봤다는 사실은 나쁜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니 말이다. 대통령이 이런 표현들을 쓸 때는 상대와의 동질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윗사람 혹은 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반복될 때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은연중에 화자의 전지전능한 관점을 드러내 준다.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고 한마디 던지면 상대는 자기 얘기를 제대로 털어 놓기가 힘들어 진다. 마치 상대가 얘기를 끝내기도 전에 성급히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대통령이 체험해 봤다는 당시의 그 상황들은 지금의 환경과 같을 수 없다. 타인의 현재를 자신의 좁은 경험으로 재단하고 판단할 우려가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불통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언어습관에서 드러나는 그의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평소 언행을 보면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해 봐서…” 어법도 그렇고 기자회견을 갖는 패턴을 봐도 역시 그렇다.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회견은 극도로 회피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안이 생겼다 하면 즉각적으로 회견을 갖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리더의 스타일은 조직의 분위기와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리더십과 관련해 새로운 지평을 연 현장연구로 평가받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보면 위대한 기업 경영자들의 리더십은 우리의 통념을 뒤집어 놓는다.
콜린스는 수년에 걸친 조사와 인터뷰를 한 끝에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CEO들은 전혀 리더답지 않은 리더들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나서기 좋아하고 언론 노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며 조심스럽고 심지어 부끄럼까지 타는 사람들이더라는 것이다.
보통의 CEO들은 기업이 승승장구 할 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고 문제가 생기면 창문 너머의 환경을 탓한다. 반면 위대한 기업을 일군 사람들은 모든 공을 철저하게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리고 자신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을 보였다고 콜린스는 들려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스타급 CEO들은 이 범주에 들지 못한다.
인품이 재주에 앞선다는 것을 위대한 기업들의 리더십은 확인시켜 준다. 이대통령과 관련해 그의 CEO형 리더십이 국정 난맥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자주 제기된다. 하지만 CEO형 리더십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설익은 것이 문제일 뿐이다.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 내는 리더십은 국가 리더십과 관련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동력을 잃은 채 과속 방지턱에 걸린 듯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한국이 한 단계 더 성숙한 나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기 PR에 능한 요란스런 지도자보다는 과묵하면서도 내면의 깊이가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해 봐서 잘 아는데”를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내가 군대 갔다 와서 잘 아는데”라는 표현은 절대 들을 일 없을 테고, 대신 “내가 대통령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말은 퇴임 후 적지 않게 들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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