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시 ‘테프론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졌었다. 테프론은 프라이펜 코팅에 쓰는 불소수지. 주부들이 조리를 하면서 가장 성가신 것은 조리기구 바닥에 음식이 눌어붙는 것인데 테프론이 나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무엇을 조리하든 표면에 들러붙지 않아 항상 매끈한 테프론처럼 레이건은 어떤 정치적 스캔들에서도 매끈하게 빠져나오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국방예산 대폭 인상에 세금환불 늘리면서도 균형예산을 약속했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민주·공화 양당의 대립은 치열했다. 툭하면 정치판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와중에서도 레이건은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평판과 인기를 유지했다. 테프론은 그 탁월한 능력에 대한 칭찬이자 비꼼이다.
우리 삶의 기후는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종종 폭풍우 산사태 홍수 벼락 가뭄 등 악천후를 맞는다. 그런 예기치 않은 사태들로 심신이 망가지고 영혼이 상처투성이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뭔가 ‘테프론’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생각이 든다.
세상이 참으로 어수선하다. 한국에서는 시도 때도 없는 기록적 폭우로 피해가 극심하고, ‘신사의 나라’ 영국은 ‘폭도의 나라’가 되어 버렸고, 뉴욕 증시는 폭락과 폭등을 어지럽게 반복하고 있다. 저마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그 아수라장의 근원을 짚어보면 결국은 모두 먹고 사는 문제이다.
홍수와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논이며 과수원, 양식장이 쑥대밭이 된 농어민들은 살길이 막막해 망연자실하고, 영국의 저소득층 청년들은 무직·실직의 좌절감을 약탈과 폭력으로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미국의 서민들은 날로 불안한 경제 전망 앞에서 버틸 힘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 재정위기로 촉발된 이번 증시폭락은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을 그대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때 같은 위기는 아닐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지만 문제는 희망의 잔고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정부가 어떻게든 수습을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신뢰가 남아있지 않다.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연방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1/4에 불과하다. 미국인의 3/4은 정부의 능력을 불신한다는 말이다.
한인사회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불경기 이후 많은 업소들은 매상이 줄어 건물세 내기도 힘든 데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한 자영업자는 말한다.
“지금까지는 내년이면 나아지겠지, 몇 달 후면 괜찮겠지 했는데 이제는 그런 희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암담함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제의 체감 한파를 표시하는 고통지수가 28년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해 산정하는 고통지수는 지난 5월 기준, 12.7로 1983년 이후 최악이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 고통지수가 11.04였으니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는 말이 된다.
언제 개선될 지 모를 암울한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내자면 ‘테프론’이 필요하다. 실망이나 좌절, 분노, 후회 같은 찌꺼기들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들러붙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 - 복원탄력성이다.
용수철을 잡아당겼다 놓으면 그 즉시 원상으로 돌아가듯 역경이나 고난으로 잠시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을 말한다. 똑같이 힘든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그대로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것은 복원탄력성의 차이 때문이다.
전에 살던 집 마당에 노란 데이지 꽃나무가 있었다. 작은 화분을 사다 심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어느 날 보니 줄기에 진딧물이 있어서 살충제를 사다 뿌려야지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리고는 몇 달 후 노란 꽃을 풍성하게 피워낸 데이지가 기특해 들여다보다 보니 진딧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너무 강해서 진딧물이 기를 펼 수 없었던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
웬만한 외부 자극쯤은 흔적 없이 매끈하게 이겨내는 생명력, ‘테프론’의 주성분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자긍심, 그리고 가족친지와의 긴밀한 관계 등이다. ‘테프론 대통령’ 레이건이 좋은 모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유머 넘치는 말로 국민들과 소통의 채널을 놓지 않았던 것이 정파를 떠나 그가 사랑받은 이유였다.
“살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걸까?”라는 푸념이 자주 들린다. 아마 한동안 서민들의 재정형편은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은행잔고에서 눈을 돌려 맑은 아침 햇살, 맛있는 커피, 가족과의 즐거운 식사 … 작은 일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것이 현명할 것 같 다. 의식의 테프론 코팅 작업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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